한국일보

맹목적 반미주의를 경계한다

2000-08-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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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반미주의를 경고하고 나섰다. 김 대통령은 매향리 사건,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 개정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 사회 일각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미 움직임에 대해 "한미 공조관계는 튼튼히 유지되어야 하며 반미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반미정서라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 이같이 직접적으로 언급,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반미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의미다. 또 최근의 반미감정 악화는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번지고 있는 일종의 맹목적 통일주의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도 불러일으키고 있어 특히 우려된다.

민주주의 사회의 장점은 다양한 목소리에 있다. 한국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미주의는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가 성숙된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매향리 사건, SOFA 협정 등과 관련 주한 미군당국 및 미국정부에 문제점을 제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람직하다.


문제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반미주의 확산이다. 주한 미군 전체를 마치 ‘범죄자 집단’인 양 매도한다. 미군 소령이 서울 거리에서 피살되는 등 미군 병사 폭행사건이 지난 6월 한달 동안에만 잇달아 3건 발생했다. 일부 과격단체가 주한 미군을 납치할 가능성도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맞아 미국무부는 미국민의 한국 여행 자제를 요청했다. 또 미의회는 주한미군 사령관을 불러 한국내 반미감정을 알아보는 청문회를 가졌다.

감정적 반미주의가 팽배할 경우 한미 관계가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반미주의의 가장 직접적 피해자는 미주 한인이 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 흑인 병사가 납치돼 피살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한국인이 흑인을 증오한다는 엉뚱한 오해를 낳아 ‘4.29폭동 재현’의 악몽을 불러올 수도 있다. 반미 감정이 계속 악화돼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과거 이란 미대사관 인질사태, 걸프전쟁시 등 이란, 이라크계 커뮤니티가 겪은 엄청난 시련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한국서 일고 있는 반미 움직임은 이런 점에서 미주 한인에게 있어 결코 ‘태평양 건너 불’이 아니다. 미국내 한인 사회의 생존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커뮤니티의 단체들은 이같은 문제점을 한국의 관계당국은 물론 시민단체에 알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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