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선거, 아시아가 지켜보고 있다

2000-08-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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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 플레이트 (LA타임스 칼럼니스트)

아시아인들 가운데 오는 11월 미국 선거에 투표권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는 문제는 ‘유엔의 수장이 누가 되느냐’ ‘동남아국가 연합의 의장이 누가 되느냐’, 심지어 ‘내 나라의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구상의 유일한 수퍼파워로 남아있는 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국내문제일 수만은 없다.

아시아인들은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을 중요하게 간주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도 클린턴의 경우처럼 집권2기에 이르러서야 그같은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집권 초부터 그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를 말이다. 아시아 사람들은 지난번 아시아 금융위기 초기에 미국이 수수방관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믿고 있다. 태국사람들뿐 아니라, 미국 등으로부터 자국의 불안정한 경제 업적을 비난받고 있는 일본사람들까지도 그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은 지난번 게이조 오부치 수상의 장례에 예기치 않게 참석했던 클린턴 대통령을 따뜻하게 맞아주긴 했다. 그러나 그들은 클린턴의 대아시아 정책이 즉흥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미행정부 내에 중국에 비해서 훨씬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우방인 일본에 대한 정책을 전담할, 일본 사정에 정통한 인물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또 미국이 심심하면 해묵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문제를 끄집어내 ‘일본 두드리기’를 하는 이면에는 미노조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인들은-노조측의 정치적 볼모로 잡혀 있다고 생각되는-앨 고어보다는 조지 W. 부시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일본과는 다른 측면에서 고어를 기피하고 있다. 중국인들도 지난 98년 클린턴의 중국 방문을 고마워하고 있지만 고어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서방세계 인권옹호론자들의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정서적, 이념적인 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화하기보다는 합리적인 경제문제를 놓고 대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비록 중국의 마르크스주의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미공화당이 대기업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대기업들은 공화당 대통령이 지나치게 반중국적이 되는 것을 견제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안경을 끼고 미국 정치를 보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는 클린턴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있어서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민주당의 외교정책에 대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불편해 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의 정책이 자신들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다. 물론 이같은 생각들은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선입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는 모든 문제가 선입견에 의해 처리될 때가 많다.

가정과 전통을 중요시하는 아시아에서는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현재의 정치적 상황보다는 과거의 전통에 의해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 지역에서 고어는 클린턴의 그림자로 부시는 그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의 그림자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또 부시 전대통령은 아시아 국가, 특히 중국에서 환영받고 있는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부시는 아시아 지역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비록 54세의 나이이기는 하지만, 아시아적 기준으로 볼 때 그같은 막중한 자리에 오르기는 어리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딕 체니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함으로써 다소 만회하기는 했지만 캠페인 초기 부시의 아시아 문제에 대한 언급은 그같은 우려를 증폭시킨 바 있다. 특히 새로운 미사일 방위시스템 구축에 대한 부시의 다소 유치한 집착과 타이완 방위문제 등에 대한 발언은 아시아 지역에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수준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반면 고어는 이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매끄럽게 대처한 바 있다.

아시아 사람들은 두 대통령 후보가 캠페인 도중 한 말과 막상 당선되고 난 뒤 행동이 다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에게 투표권이 없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 선거결과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들은 자기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지도자가 될 사람을 뽑을 권리를 가진 미국인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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