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편의 외도와 성형수술

2000-08-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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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일기

▶ 배원혁<성형외과의사>

여름이 오면 기억나는 환자가 있다. 어느 무더웠던 날, 병원 문을 들어선 30대 중반의 여인은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꼭 성형수술을 받아야 하겠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 이유인즉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남편이 외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가정상담소로 변해버린 분위기에서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남편의 외도에는 어느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함께 사업을 하다보니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노출이 심한 여름이 오자, 남편의 시선이 굉장히 불안해지더니 급기야는 늘씬한 여성을 보면 대놓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여인은 남편에게 잔소리도 하고, 바가지도 긁어보고, 나름대로 다이어트도 해보았지만 남편의 증상은 점점 그 정도가 노골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은 바깥에 다녀보면 날씬하고 상냥한 여자들이 쌓였는데 집이라고 들어오면 ‘살찐 부엌데기 와이프’가 바가지만 긁어대니 영 살맛이 안 난다며 술주정을 했다고 한다.

이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이 여인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단식을 시작했고, 급기야는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의 증세까지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어느 날 아내에게 외도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날 저녁 부부는 한바탕 큰 싸움을 하였고, 마음까지 떠나지 않았던 남편은 사과를 하면서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남편에게 자신의 살찐 부분을 제거하겠다며 돈까지 받아서 성형외과를 찾아왔던 것이다.

병원을 찾아온 그 여인의 사정을 다 듣고 보니 미의 기준이 곧 외적인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논리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 여인은 그간 남편으로부터 얻은 ‘살찐 부엌데기 와이프’라는 굴레에서 단시간에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랫배와 허벅지 지방흡입과 관자놀이 및 뺨의 지방이식, 그리고 내시경 이마주름 제거 및 부분적인 안면 거상술을 시술하여 수술의 일정의 마쳤다.


그 여인은 자신의 수술 후 모습에 아주 큰 만족을 느꼈으며, 병원을 올 때마다 남편도 자신이 변해 가는 모습에 관심을 보인다며 기쁜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모든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받기만 하면 상대 남성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까? 특히 부부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상대방의 신체적 여유로움(?)도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평소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아내들이 모두 자신을 방치하라는 말은 아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결혼할 당시 모습은 아니더라도 현재의 나이에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배우자에 대한 사랑의 한 부분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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