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방에 들어온 비디오샵

2000-08-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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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스트

▶ 민경훈(편집위원)

자동차를 발명한 나라는 독일이다. 1880년대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는 개솔린을 이용한 내연기관을 장착한 차를 굴리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LA 시민의 신발이 되다시피 한 자동차지만 처음 만들었을 당시에는 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첫째 값이 너무 비싸고 고장이 잘 나는데다 말보다도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당시 교통 수단의 주종을 이루고 있던 마차 제조회사와 마굿간 주인들은 자동차를 조롱거리로 삼았다.

이같은 항간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헨리 포드는 자동차의 포텐셜을 먼저 꿰뚫어 봤다. 그는 1903년 포드 자동차회사를 설립, 기술혁신과 대량생산으로 비싸고 불편했던 기존 제품의 단점을 해소함으로써 자동차가 미국은 물론 세계인의 대중 교통 수단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를 비웃던 마차회사와 마굿간 주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00년전 교통업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이제 연예업계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블럭버스터는 최근 금년 연말부터 집에서 컴퓨터나 TV를 통해 영화를 마음대로 골라 볼수 있는 주문제 비디오 프로그램(video on demand)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지금도 페이퍼뷰와 같이 돈을 내면 일정시간에 정해진 영화를 볼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VOD는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영화를 자유롭게 볼수 있고 패스트포워드, 리와인드등 실제 비디오와 똑같은 기능이 들어가 있다.


지금도 스트리밍 비디오를 통해 영화나 TV 뉴스등을 시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화질이나 속도가 기존 TV에 훨씬 못미친다. 정보 전송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가장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연결 속도이다. 기존 전화선은 말할 것도 없고 DSL등 특수라인을 이용하더라도 접속 속도가 고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지금 미 하이텍 분야중 가장 뜨거운 곳이 케이블, 광섬유, 위성통신등을 포함하는 고속 정보 라인 건설회사인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전송속도가 빠른 광섬유 분야 선두주자인 JDS 유니페이스는 최근 S&P 500대기업 리스트에 추가될 정도로 뜨고 있다.

비디오를 빌리러 차를 몰고 가 반환날짜에 맞춰 돌려 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VOD의 강점이지만 올해 이를 이용하는 미국인수는 그다지 많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미국내 2개 도시에서만 시범적으로 시작할 계획인데다 이를 받아 보려면 우선 고속 정보선을 깔아야 한다. 현재 미국내 고속정보선 설치 가정은 200만 가구에 불과하다. 거기다 신청 가격도 비디오 빌리는 것보다는 비싸다.

VOD는 오랫동안 비디오 업계의 조롱거리였다. 94년 타임워너사는 올란도 일부 가정에 VOD 시스템을 설치했다가 채산성이 맞지 않아 포기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하이텍 분야에서 6년은 긴 세월이다.

미국에서만 7,000개의 업소와 4,20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블럭버스터는 연 90억달러에 달하는 비디오 렌털 시장의 1/3을 장악하고 있는 미 최대 비디오 렌트회사다. 이런 회사가 제살 깎아 먹기인줄 뻔히 알면서도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이 길이 피할수 없는 대세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자체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5년내 비디오 렌털 시장의 절반을 VOD가 잠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비디오는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미 영화사들이 영화 한편을 만들어 뽑는 총수입중 25~50%가 비디오 렌털 수입이다. 뿐만 아니라 VOD를 먼저 잡는 업체는 앞으로 브로드밴드로 불리는 고속정보선을 통한 각종 정보 미디어 시장을 장악하는데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블럭버스터외에 쇼우타임이나 HBO 같은 케이블 채널은 물론 케이블 공급회사들까지 VOD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도 그 까닭이다. 블럭버스터의 변신은 기술혁신에 발맞추기 위해 자신의 기존 시장까지 희생하는 기업 경쟁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한 예다.

당장 모든 미국인이 VOD를 신청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속정보선을 까는 비용은 내려갈 것이고 이용자수도 늘어날 것이다. 집에서 클릭 한번으로 ‘허준’을 볼수 있는 시대가 다가 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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