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도 벤처? 나도 벤처

2000-07-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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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안상호 <경제부장>

미국신문은 영어라서 그렇다 쳐도 요즘은 한글로 된 신문도 이해가 쉽지 않다는 이가 적지 않다. 주로 경제쪽 이야기지만 도대체‘말씀’들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평이다.

예를 들자면 CDMA-. 영어 약자로는 몰론이고‘코드분할방식’이란 한글번역도 비교적 흔히 대하는 이 정보통신 용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코드를 나눠? 그래서?”라는 이야기가 뒤따르기 쉽다.

인터넷으로 경제용어사전을 더듬어가면‘디지털 이동전화의 다중접속기술의 하나로-’라고 시작하는 설명이 모니터의 스크린 한 장을 넘지만 다 읽고 나면 미로를 헤매다 나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요즘 부딪히는 이 문제가 단순한 용어 뜻풀이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아는 사람들에게야 상식이겠으나 ‘보통 독자’들은 B2B, P2P, 심지어 디지털이니 아날로그니 하는 말도 생소하긴 마찬가지다.


우연히 펼쳐본 서울의 한 종합일간지 경제섹션 1면도 광고빼면 기사가 5꼭지인데 제목이란게 모두‘IT와도 융합, BT 용틀임’, ‘만화 전자화 인터넷 판매’ 대충 이런식이다. 세금기사 하나를 빼면 모두 정보통신, 하이텍, 인터넷, 벤처등 이른바 신경제 관련기사다. 미 주요 일간지의 경제섹션도 다를 바 없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변화의 속도는 엄청나다는 것을 최근 부쩍 실감한다. 세계경제의 지표라고도 할 뉴욕증시의 화제나 장을 선도하는 주들은 누가 뭐래도 하이텍 기술주나 인터넷 관련주식들이다. 신경제를 ‘괴담’이라 여기며 팔장을 끼고 있기에는 주위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방학이 되자 봇물 터지듯 조기유학이어서 서울의 한 신문은 “너도 가니? 나도 간다”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지만 요즘은 LA 한인사회서도 “너도 벤처? 나도 벤처”, 혹은 “너도 닷컴? 나도 닷컴”이라고 할만 하다.

주위의 평범한 이웃들이 얼마 후 만나보면 닷컴 기업가로 변신해 있는 예가 허다하다. 호텔과 일식당을 잘 운영하던 한 50대초의 부인이 인터넷 전화와 3D 소프트웨어 사업의 운영자가 돼 있는가 하면 치과병원의 오피스 매니저였던 30대 후반 여성도 하이텍 기업의 투자유치 매니저로 활기차게 뛰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은 대부분 하이텍이나 닷컴기업가로 변신해 있다. 곤란한 것은 이쪽이다. 우선 사업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투자유치가 급선무인 상대방은 열심히 사업구상을 설명하지만 한 번 들어 이해가 되는 않는 기술적인 사항이 너무 많다.

나스닥 상장을 통한 일확천금을 확신하는 상대방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실적은 없지, 이미 정리해고가 시작된 닷컴의 늪에서 이들이 얼마나 살아돌아 올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비가 쏟아붓기 전에는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알기가 어려운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저녁시간에 한가하게 ‘허준’이나 ‘왕건’에 젖어 있는 새 신경제의 물결은 어느덧 현관 앞에까지 밀려와 넘실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파고가 온 집안에 밀려들어 올 때 남겨진 선택은 익사하느냐, 헤엄쳐 나가느냐 두 가지인데 문제는 이 전환기의 물살이 정신차릴 수 없이 세찬데다 조류의 방향마저 수시로 뒤바뀌기 때문에 웬만한 노력으로는 수영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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