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법 복제를 삼가야 되는 이유

2000-07-27 (목)
크게 작게

▶ 21세기는 지적 자산의 시대

▶ 임진혁<뉴올리언스대 경영정보학 교수>

내가 아는 한 미국교회의 경우에 성가의 가사가 주보에 적혀 있을 때면 그 밑에 늘 ‘CCLI#000000’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한 교인에게 물어 보니 그 교회에서 그 성가의 가사를 주보에 실어도 된다는 교회 저작권 라이센스 번호란다. 즉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성가들의 가사를 주보에 싣기 위해 한 교회에서 연간 일정한 금액을 일괄하여 지불하고 교회가 저작권 라이센스를 구입한 것을 증명하는 번호인 것이다.

저작권이란 영화, 음악,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지적 자산의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보호장치이다. 1976년에 제정된 미국의 현행 저작권법에 의하면 개인인 경우에는 개인의 생전동안과 생후 50년, 익명이거나 단체인 경우에는 발표된 날로부터 75년간 혹은 창작된 날로부터 100년간 저작권의 보호를 받게 된다. 저작권이 침해당했을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통해 실제 손실액이나 피해 보상액을 청구할 수 있고, 저작권 침해자가 상업적 목적으로 했다면 형사 사건이 된다.

저작권이 있는 지적 자산을 불법복제하는 이유는 크게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요인의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불법복제하면 경비가 적게 들게 되므로 경제적 이득이 있다. 특히 복사기와 컴퓨터 등과 같은 기자재를 이용하면 쉽고 저렴하게 대량복사를 할 수가 있다. 물론 저작권자는 불법복제로 인해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둘째, 문화적 배경에 따라 사용자들이 지적 자산의 저작권에 대해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 특히 유교적 사고에 젖은 동양권에서는 지적 자산의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다. 지적 자산이라 한 지식인 개인의 사유물이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사회전체가 공유하는 개념이 강하다. 따라서 이런 문화적 배경하에서는 복제가 오히려 장려되고 저작자는 저작권의 보호를 통한 경제적 이득보다는 명성이 널리 알려짐으로 인한 사회적 보상을 받게 된다.


복제가 많이 되는 지적 자산은 그 만큼 많이 알려지게 되고 따라서 저작자의 명성이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볼법복제자는 저작자에게 미안해 할 것이 없고 역설적으로 그의 인기 상승에 도움을 주게 된다. 하지만 서구의 문화적 배경에서는 이러한 지적 자산의 공유개념이 없으며 저작자의 경제적 이득이 중시되고 있다. 셋째, 교육, 법률시스템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도 불법복제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차원 혹은 교회차원의 소규모 복제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은밀히 이루어지는 볼법복제를 저작권자가 어떻게 알겠는가? 라는 통념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지적 자산에 대한 저작권을 존중하도록 윤리적 교육을 한다. 또한 엄격한 법률시스템을 갖추고 불법복제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내 경험으로는 한인교회들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 즉 복음성가의 가사를 주보에 적는 수준을 넘어 이곳 저곳에서 좋은 복음성가들만 골라서 교회자체의 복음성가집을 만들기가 다반사이다. 복음성가 테이프도 원본을 한 부만 구입해서 자체 복사기로 교인수대로 복사해서 나누어 듣는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주보 편집을 위해 사용하는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소프트웨어도 불법복제된 것을 사용하는 것을 본다. 가게에서 25센트하는 껌 한통 훔치는 것은 절도에 해당되지만 가격이 1백달라가 넘는 소프트웨어는 정품사기가 아까워 불법복제품을 쓴다면 더 큰 절도에 해당된다는 것이 서구인의 지적 자산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교회들의 규모나 교인들의 경제적 수준으로 볼 때 불법복제품을 사용하는 이유를 경제적 요인만으로 변명하기는 힘든다. 문화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겠다. 하지만 문화적 요인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적 요인을 고집하는 것은 불법복제를 합리화시키려는 아집에 불과하다.

이제 한국교회들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 결여를 경제적 혹은 문화적 요인으로 돌리기보다는 사회적 요인이 주원인임을 인식하고 해결하도록 해야한다. 즉 교역자들이 앞장서서 지적 자산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교인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지난주일 한 한인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이번 여름 학생들 수양회용 성가테이프를 저작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모두 정품을 구입했으니 좀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녀들을 위해 구매해 주기 바란다"라는 광고가 신선하게 들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