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책가방 속의 담배

2000-07-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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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의 세상읽기

▶ 권정희 편집위원

여름방학을 맞아 많은 대학들이 고교생 대상 클래스들을 제공하고 있다. 영어나 수학, 컴퓨터, 혹은 SAT 준비과정등이 있는 데 이런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는‘단골손님’이 한인학생들이다. 대학의 수업이니 수준을 믿을수 있고, 수업 끝난 후 대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할수도 있어‘일석이조’라는 것이 부모들 계산이다. 과연 꼭 그럴까? 모대학에 고교생 딸을 픽업하러 갔던 한 주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모는) 도서관 앞에 아침 일찍 데려다 놓으면 아이들이 하루종일 공부하는 줄 알겠지요? 낮에 가보니 녀석들이 모여 앉아서 담배만 피우고 있더군요”

대학 캠퍼스만이 아니다. 여름방학 맞아 학생들이 몰린 학원주변에서도, 심지어는 교회가 주관이 된 청소년 캠프 주변에서도 담배연기가 자욱하다고 한다. 모두들 집에 돌아가면 “우리 아인 너무 순진하다”고 믿는 부모의 자식들이다. 부모와 자녀가 머릿속에 전혀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는 현실 중의 하나가 청소년 흡연이다.


몇달 전 LA 인근의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한인 남학생이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처벌을 받았다. 학생의 부모가 가슴 철렁하게 놀란 것은 물론이다. 반면 같은 학교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학생의 한 친구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애가 미련해서 걸렸지요. 남들은 다 잘만 피우는데…”
담배의 해악성에 대한 교육이 초등학교때부터 실시되고, 담배소지 및 구매연령을 법으로 정하는 등 사회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흡연은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질병통제센터의 근년 통계를 보면 고교생중 한두번이라도 흡연경험이 있는 학생은 70%가 넘는다.“고등학교 가면 담배는 어디가나 있다”는 학생들의 반응은 과장이 아니다.

문제는 두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우리의 자녀들이 흡연 유혹이 너무 강한 환경에서 자란다는 사실. 둘째는 부모가 보는 현실과 자녀가 사는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많은 한인부모들은 “미국에서 청소년 흡연율이 높다”는 사실까지는 인정하면서도 “내 아이도 미국 청소년중의 하나이다. 고로 담배 피울 가능성이 높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린다.

몇 년전 가깝게 지내던 이웃중 남편은 대학교수이고 부인은 사립고교 교사인 백인가정이 있었다. 소위 교육자 집안인데 당시 고교생이던 큰딸 니콜의 행동이 가관이었다. 갑자기 방안에 까만 페인트칠을 하는 가하면, 어느날은 코걸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고, 새까만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에는 이상한 염색을 하고, 그리고 담배를 연신 피워대고…

“부모 속이 얼마나 상할까”걱정하던 나는 어느날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사춘기 아이 키우기 힘들지 않느냐고. 그 부인은 뜻밖에도 미소까지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니콜은 지금 애를 쓰고 있는 거예요. 부모로부터 떨어져 홀로 서기는 해야겠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니까요.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몇 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정말로 2년쯤 지나 대학에 들어가자 니콜은 거짓말같이 참한 여성이 되었다.

청소년의 흡연은 성인의 흡연과는 다르다. 흡연 욕구가 원인인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으면서 뭔가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고, 이유없이 반항도 해보고 싶은 심리적 요인들이 원인이다. 평소 열등감이나 우울증이 있는 아이, 가정에서 소속감을 못 느끼는 아이들은 담배에 손댈 위험이 더 높다고 한다.

자녀의 책가방에서 담배나 성냥을 발견하고 정신이 아찔했다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나도 고등학교때 담배 피웠는데. 담배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지”하는 대범한 아버지들도 간혹 있다.


자녀의‘담배’를 그냥‘담배’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본다. 청소년기의 단순한 호기심일수도 있고, 심각한 문제들이 뒤에 숨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자녀의 경우가 어느 쪽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은 부모이다. 자녀와의 대화터널에 막힌데는 없는지 오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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