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밀입국의 수요와 공급’

2000-07-22 (토)
크게 작게

▶ 기자수첩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또 가격은 수요자가 낼 수 있는 선과 공급자가 받아낼 수 있는 중간지점에서 결정된다.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 원칙은 ‘미국 밀입국 상품’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한국인 21명이 지난 7일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체포된 캐나다 국경지역을 13일∼16일 방문해서 취재했다. 14일 워싱톤주 오로빌 지역 국경수비대장의 순찰차에 동승, 한국인이 체포됐던 국경도로를 돌아보던중 비닐봉지에 싸인 한국산 치약과 칫솔 3개와 한국어로 된 여행안내 일정표를 발견했다.

자정이 가까운 야밤에 이들이 얼마나 경황없이 체포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들 비품들을 보면서 기자로서 ‘기사거리’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그들에 대한 동정과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정심과 수치심을 함께 느꼈다.


가족상봉, 취업등 다들 급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맹수가 득실거리는 지역에 야밤 밀입국이라니, 한국이 더이상 3류 빈민국가도 아닌데, 영주권이 뭐길래 등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번에 체포된 한국인들은 추방되면 최소한 10년이상은 합법적인 미국 입국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십중팔구 재입국을 시도할 것이다. 설사 이들이 밀입국에 성공했더라도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늘방석’ 같은 불법체류자 생활이다.

한가지 명확한 것은 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미국에 끌려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과 미국에서 연계해 활동하고 있는 이주공사들에게 적게는 3,000달러에서 5,6000달러까지 내고 미국 밀입국을 의뢰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10년전만해도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스토리를 흔히 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손쉽게 돈을 벌고 싶어 제발로 걸어오는 여성들로도 공급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매춘업소의 포주나 밀입국을 알선하는 브로커들만 탓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캐나다 국경을 통한 밀입국이 앞으로도 계속 증가될 것은 일단 캐나다까지는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어 여러가지 이유로 미국비자를 못받는 한국인들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취재를 통해서 미국-캐나다 국경은 마음만 먹으면 밀입국할 수 있는 지역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밀입국 상품’ 가격은 당분간 오름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