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여성존중하면 내 딸이 존중받는다.

2000-07-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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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 이보나<뉴욕가정상담소 소장>

얼마 전 뉴욕시 센트럴팍의 푸에르토리칸 퍼레이드 도중 여러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여성들을 놀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욕시장과 경찰국장은 연일 매스컴을 통해 가해자 남성들을 질책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여성들을 놀린 남성들은 무더기로 체포되었다.

여성의 인격을 무시하고 성희롱하는 남성들의 행동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며 즉각적 반응을 보이는 미국사회에 대해 한 여성으로서 박수를 보낸다.

우리 한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회문제들 중 하나는 바로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당하는 성희롱, 성폭행이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해마다 30만명의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여성 피해자들 중 65%가 법에 호소도 하지 않고 혼자만의 비밀로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우리 한국에서도 근래에 이러한 사건들이 사회문제로 자주 대두되고 있다.


최근 뉴저지에서 한 한인남성이 14세된 입양아 소녀를 세 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우리 상담소에도 한인들이 자신들의 십대 딸이 어른들로부터 강간등 성폭행을 당한 것을 알고 급히 상담을 청해오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작년에 유학온 20대 초반의 처조카를 강간하여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이 한인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는데, 이 피해여성이 부모와 같이 처음 우리 상담소를 찾아왔다. 그 때 당시 그 피해자는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이 파괴된 상태였으며 겁에 질린 채 고개를 숙이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여성은 언어 연수를 받기 위해 뉴욕에 있는 이모집에서 하숙을 하였는데 외숙부의 성적 접근에 당황하고 고민하였지만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다만 전화로 여러번 “나 다른데 나가서 하숙하겠어요”라고만 했었다.

부모는 뉴욕이 험하다는데 이모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했고, 그녀는 이모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있다가 모든 식구들이 다 있을 때 집으로 들어가곤 하면서 괴로운 방황을 혼자 했다고 한다.

결국은 어느날 조카가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안 이모부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목을 조르면서 강간을 했다. 그후 그녀의 부모는 딸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게 되었고, 부모는 급히 다음날로 뉴욕에 와서 자초지종의 상황을 알게 되어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서의 소개로 우리 상담소를 찾아와서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제 내 딸의 인생은 망쳤다”“얌전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딸인데...”하시면서 말도 못 끝낸 채 우시는 그 피해자 부모의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강간은 성적 행위(Sex)가 아니다. 이 사회의 법은 강간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대방을 지배하고자 하는 폭력의 행위로 규정한다. 대부분의 강간행위는 우발적이고 충동적이라기 보다는 계획된 행위라고 한다. 일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피해자들은 악몽을 잊어버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수많은 피해자들은 이로 인한 여러가지 후유증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자기혐오감과 악몽 등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린다던가, 남성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정신적 사회적 이질감과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며 또한 성불감증으로 인한 가정파탄을 많이 경험하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그 젊은 여성은 우리 뉴욕가정상담소로부터 정규적인 상담을 받아 힘을 얻어 갔으며 자신이 당한 강간은 “나의 잘못일 수 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필요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에 잘 협조함으로써 그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에 걸맞는 처벌을 받게 되었다.

물론 가해자에게 법적 처벌을 받게 해야 할 지 혹은 가해자 가족들이 불쌍하여 용서해야 할지 피해자의 온 가족들이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 부모들은 병들고 도덕관이 희미한 이 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이 당당하게 자기 보호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들들에게도 평소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도록 예방적인 차원에서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가정에서 먼저 아버지들이 아내를, 또한 딸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겠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자랐거나 본인이 직접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란 여성들이 많은 경우 남성들로부터 학대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당장 성희롱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말못하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우리 한인사회 전체가 여성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행동과 분위기가 모임이나 직장에서도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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