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혼혈아의 수기

2000-07-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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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좋아 하지만 미국인을 사위나 며느리로 삼는 것은 싫다"는 것이 한국풍토다. 이민사회 초창기에는 그런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본인들끼리 좋아서 결혼하는 것을 부모가 어떻게 막느냐"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한국인들이 과거 자기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편견을 갖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혼혈아의 수기가 요즘 미국에서 출판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Ten Thousand Sorrows’(억장이 쏟아지는 슬픔)라는 이 입양아의 회고록은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미국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뛰고있는 엘리자베스 김의 눈물겨운 인생스토리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창녀출신이 아니다. 휴전직후 서울 변두리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미군병사와 사귀어 임신까지 하게 되지만 GI는 떠나버리고 그녀는 대책없이 엘리자베스를 낳는다. 살길이 막연해진 그녀는 혼혈아인 딸을 데리고 시골친정에 내려가 농사일을 하며 연명하지만 아버지가 받아주지 않는다. 딸은 집안을 망신시킨 더러운 여자로 취급받는다.

엘리자베스가 5~6세쯤 되던 어느날 드디어 끔찍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엄마’의 아버지와 오빠가 찾아와 엘리자베스를 다른집에 맡길 것을 강요하지만 ‘엄마’는 끝끝내 거절한다. 화가 난 ‘엄마’의 아버지와 오빠는 그녀를 천정에 목매달아 죽인다. ‘엄마’는 혼혈아를 낳은 것에 대한 당연한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버지가 자기를 목매달아 죽이는 것에 대해 조금도 저항을 하지 않는다. 숨막히는 이 모든 장면을 엘리자베스는 목격하게되며 두고두고 악몽처럼 떠오른다.

이 책을 읽어보면 혼혈아의 마음의 상처와 한국인의 인종편견에 대해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었나" "코리언이 미국에 살면서 인종차별 운운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등등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막을수가 없다. 엘리자베스는 자기 어머니의 이름도 모르고 자기 생년월일도 정확히 모른다. 자기 어머니를 ‘엄마’로 부르면서 자란 기억밖에 없다.

’엄마’와 엘리자베스가 벼심는 일을 마치고 마을을 지나려면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오며 침뱉는 소리가 들린다. 엘리자베스가 머리에 피를 흘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엄마’를 목매달아 죽인후 삼촌이 엘리자베스의 신체 일부를 담배불로 지지기까지 한다.

그녀가 마침내 홀트양자회의 주선으로 미국에 오게 되지만 그 뒤 입양아가 걷는 인생길은 산넘어 산이고 지갈밭과 가시밭이다. 입양-결혼-가출-이혼등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으며 그녀는 딸과 함께 마침내 생활의 독립을 찾게된다. 자기 딸에게 만은 자신과 같은 비극을 겪지않게 하겠다고 맹세하며 여기자로서 성공한다. 여름방학때 자녀들에게 책을 사주고 싶은 부모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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