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연시 된 이별

2000-07-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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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칼럼

▶ 한영숙<심리학 박사·뉴욕>

77살 된 노인께서 우신다. 죽을 때가 가까워 오니 이북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들이 더 생각난다 하시며. 6.25 때 월남한 젊은이들이 50여년이 지난 지금 인생의 말년을 맞게 되었기에, 그동안 접어두었던 설움이 다시 복받쳐 오르나 보다.

우리 사회에서는 6.25가 가져온 가족과의 이별을 “수만명이 겪은 일”이라 하여 당연시하고 그 생이별이 일개인에게 자아낸 정신적, 감정적인 상처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오지 않았다. 그분들이 이제 이산의 뼈저린 슬픔을 표현할 때, 가족과 같이 살며 축복 받아온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성장과정을 심리학적으로 보면 어려서 자기를 돌봐준 사람들(대부분이 부모)과 이별하는 것처럼 감정적으로 타격이 큰 것이 없다. 이런 이별로 인해 아이들은 정신적인 불안을 경험하며 근본적인 우울함과 외로움을 겪게 된다. 한 인간의 성립에 있어서 부모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결론이다. 말하자면 부모의(또한 형제들의) 사랑에 의해 아이들은 신뢰하는 것을 배우며 마음의 편안함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에 의해 가족 외 다른사람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이러한 의미있는 인간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인간은 삶의 만족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가족관계가 삶의 기초가 되는데 그 기초가 어느 날 갑자기 이별로 끊어진다면 성인일지라도 그 정신적인 상처란 말할 수 없다. 그러기에 아무리 이 사회에서 6.25 때 일어난 이별을 당연시했다 해도 월남한 개인들이 경험한 외로움, 우울감, 허무감, 그리고 분노를 불평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 무리다.

“남들도 다 겪은 일인데 아버지는(혹은 어머니는) 왜 그렇게 유별나게 외롭다고 불평해요”라는 핀잔보다는 그들의 처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이해해줘야 한다. 우리 자신들을 생각해 볼 때 만일 부모가 두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에서 사시는데도 만날 수 없다든지, 또는 자식이 세시간 거리에 사는데도 평생 만날 수 없다면 그 아픔과 상처가 오죽할까.

여태까지는 월남한 그들이 슬픔을 일상생활에서 잊으려 노력했기에 내 생전 언제인가는 통일이 되리라는 희망을 간직했기에, 아니면 그동안의 인생 행로가 결혼하고 자식들 기르고 어려운 생활 꾸려 나가느라 바빠, 그 애저린 슬픔을 등뒤로 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과거를 되돌아보며 삶을 정리하려 할 때 이북에 남기고 온 자신의 기초가 더 그리워지고 더 뼈저리게 이별의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면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그 노인들의 현재의 슬픈 감정을 덜어드릴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그들이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할 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운 감정 상태가 받아들여져 괴로운 감정들이 정상화됐을 때 그들은 혼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나며 위안을 받게 된다. 그러기에 그 사람들이 과거를 더 기억할 수 있게, 질문까지 해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또한 생기있는 감정적인 사랑을 주어 그들이 가족을 그리기에 경험한 외로움 때문에 메말라진 가슴의 한 구석을 촉촉하게 적셔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월남한 노인들의 이산의 상처를 덜어 드리기 위해 우리 후손들은 그 분들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감정생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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