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리웃 보울

2000-07-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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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박흥진(편집위원)

여름 LA의 음악잔치인 할리웃 보울시즌이 시작된지 벌써 한달째가 되어 간다. 80년 전통을 지닌 할리웃 보울은 LA가 ‘별들 아래 교향곡’이라 내세우며 여름밤을 음악으로 수놓아 세계적으로 알려진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보스턴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미국의 웬만한 오케스트라들은 모두 야외 여름시즌 공연을 열고 있지만 할리웃 보울만큼 유명하지는 못하다. 클래시칼과 오페라와 뮤지컬과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제공하는 보울무대에는 그래서 옛날부터 이들 장르의 대가들이 섰고 또 많은 음악인들은 보울시즌에의 참여를 자기 이력의 큰 자랑으로 삼고 있다. 라프마니노프와 하이페츠, 스토코우스키와 브루노 발터 그리고 베니 굿맨과 프랭크 시나트라와 엘라 핏제럴드 갈은 거장들이 보울무대를 장식한 음악인들이다.

그러나 할리웃 보울은 음악과 피크닉과 교제를 위한 장소인 데다 클래시칼 뮤직과 팝을 뒤섞은 프로그램이 많아 순수 클래시칼 뮤직팬들이 음악에 심취하기에는 그다지 적당한 곳은 아니다. 그저 할리웃 보울의 다른 명물인 와인의 나른한 기분에 젖어 연인이나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온 기분을 즐기면 된다.


게다가 밤이면 밤마다 보울 상공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엔진소리와 포도주병 굴러가는 소리 그리고 연주 도중 들락날락하는 사람들과 요즘에는 셀폰까지 울어대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의 정밀한 마음을 훼방놓곤 한다.
보울 프로그램의 잡탕성이 주는 혼란과 함께 이 곳이 클래시칼 뮤직을 즐기기에는 부적당한 곳이라는 사실은 지난 11일 LA필의 첫 연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레너드 슬래트킨 지휘로 LA필은 관현악곡과 오페라 아리아 및 미국의 민요와 뮤지컬을 연주했다. 노래는 메조소프라노 프레데리카 본 스타드와 베이스 새뮤엘 헤이미가 불렀다.

그러나 이 날의 연주와 노래는 그 어느 것 하나 정열이나 섬세함 또 완숙미가 결여된 채 지극히 건조한 행사로 그쳤다. 그나마 그중 나은 것은 프레데리카 본 스타드의 노래. 게다가 객석의 절반 이상이 비어 분위기마저 썰렁했는데 LA타임스의 음악비평가 마크 스웨드도 말했듯이 이날 연주는 내가 여지껏 참석한 보울의 시즌 첫 LA필 연주회 중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었다. 게다가 작년까지만 해도 1부에 50센트하던 프로그램이 1달러로 올랐다.

그러나 이 날의 졸속 연주는 하나의 작은 실수로 여기고 보면 남은 시즌의 프로그램은 매우 다채롭고 흥미있게 짜여져 있다. 보울연주는 화·목요일은 LA필의 순수 클래시칼 뮤직 수요일은 보울전속인 클레이턴-해밀턴 재즈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리고 금·토요일은 불꽃놀이(없는 주말도 있다)와 함께 존 마우체리가 연주하는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의 영화음악, 재즈와 팝, 컨트리및 발레음악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불꽃놀이와 함께 연주되는 곡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연중 단골작품인 차이코프스키의 ‘1812’서곡. 이번 시즌에는 9월 1·2·3일 이 프로가 연주되는데 보울오케스트라와 USC 트로잔 마칭밴드가 요란벅적지근하게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입성과 궁극적 패배를 축하한다.

한편 일요일에는 쿠바, 아프리카, 브라질 및 아일랜드 등의 세계 음악이 연주된다.

남은 시즌중 권할만한 프로로는 우선 8월24일의 조수미의 ‘비엔나: 꿈의 도시’가 있다. 조수미는 이날 LA필의 반주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월츠와 폴카를 비롯해 옛 비엔나의 노래들을 부른다(여기서 독자들에게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람이 나올 때만 음악회를 가지 말고 다른 것도 즐기라는 것이다. 음악에도 편식은 좋지 않으며 또 음악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21·22일 로즈메리 클루니와 마이클 파인스타인의 팝송을 즐길 수 있고 토니 베넷과 다이애나 크랄이 노래하는 8월 4·5일의 무대는 최고급. 한편 9월13일에는 클레이턴-해밀턴 재즈 오케스트라가 루이 암스트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주를 한다.

이번 시즌에는 클래시칼 뮤직의 스탠다드 곡들이나 다름없는 우리 귀에 익은 작품들이 많이 연주된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20일)와 바이얼린 협주곡(8월3일) 및 ‘영웅’교향곡(8월8일)과 함께 라프마니노프와 리스트, 쇼팽과 브람스와 드보르작및 멘델스존 등의 대표작들이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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