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시안 아메리칸 드림

2000-07-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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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조윤성 (부국장, 국제부장)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한지 2주 후 타임지는 "중국인 ‘친구’와 일본인 ‘적’을 구분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물론 일본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적개심에 불을 붙이기 위해 쓰여진 것이었다. 기사 본문의 일부는 이렇다.

"사실상 모든 일본인들은 키가 작다. 일본인들은 키 작은 중국인보다 더 짤막하고 엉덩이가 크며 살찐 경우가 거의 없다. 일본인은 중국인들보다 미간이 좁고 중국인들이 친절하게 개방적으로 표현하는데 반해 일본인들은 독선적이고 건방지다. 그들은 대화를 하는데 머뭇거리고 조바심을 내며 엉뚱한 때에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일본인들을 상종하기 힘든 형편없는 국민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10년 후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당한다. 중국의 공산화에 따른 이른바 ‘붉은 위협’으로 미국 내의 중국인들은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됐다. 중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50년 연방의회는 간첩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합당한 근거만 있으면 누구나 잡아넣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매캐런 국내 안보법’을 통과시킨다. 중국인들을 겨냥한 것임은 물론이다.


연방정부는 얼마나 간교했던지 차이나타운 곳곳에 ‘자백 프로그램’ 안내문을 써 붙였다. 내용인즉 간첩행위를 하는 친구나 가족을 고발하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준다는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만 1만명 이상이 고발을 해왔다. 그만큼 중국 커뮤니티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미국사회 속에서 ‘모델 소수민족’으로 평가받고 있는 아시안들. 그러나 아시안들이 미국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 어휘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68년으로 불과 30여년 전의 일이다. UC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 스테이트 칼리지 아시안 학생들이 "아시안 관련 강좌를 개설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격렬한 시위를 벌일 때 처음으로 등장한 말이다. 그전에는 그저 ‘오리엔탈’일 뿐이었다. 호칭이 말해주듯 아시안들은 온전한 미국사회의 구성원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2차대전 전 미국사회에서는 ‘중국 남자의 기회’(Chinaman’s chance)라는 속어가 많이 회자됐다. 그 뜻은 무엇이었을까. "아무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렇듯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의 아시안들은 터무니없는 차별과 규제 속에 살아야 했다.

2주전 클린턴 대통령은 일본계 2세 노먼 미네타 전 연방하원의원을 연방상무장관으로 지명했다. 아시안들의 미국 이주 역사가 한세기 반에 달하고 그동안 무수한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미네타는 연방정부 각료가 된 첫 아시안이다. 11선의 연방하원 출신인 미네타는 임기가 6개월여에 불과하겠지만 첫 물꼬를 텄다는 상징적 의미는 적지 않다.

그가 의원 재직시 경험한 한 일화. GM사의 초청을 받아 이 회사 직원들에게 강연을 한 미네타에게 GM사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영어를 너무나 잘하는군요. 놀랐습니다." 이런 저런 긍정적 평가 속에서도 아시안 아메리칸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일반적 인식 수준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아시안들로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침 미국내 아시안들의 질곡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좌표 설정을 시도한 좋은 책이 나왔다. 중국계 언론인 헬렌 지아가 쓴 ‘아시안 아메리칸 드림스’(Asian American Dreams)가 그 책인데 클린턴이 미네타 상부장관을 소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언급한 책이다. 이 책 속에는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겪었던,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 여러 챕터에 걸쳐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자녀들이 ‘옐로 바나나’로 자라고 있는데 우려하는 부모들이라면 방학 중 이 책을 자녀들에게 읽히도록 권하고 싶다. 부모 세대의 고통을 올바로 이해하게 될 때 자녀들은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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