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시대와 새리더

2000-07-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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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한문에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와신상담’이라고 한다. 또 이를 부득부득 갈며 빼앗긴 자리를 다시 회복할 때도 “와신상담 끝에”라는 표현을 쓴다. BC 500년쯤 중국에서 있었던 오나라의 왕 부차와 월나라의 왕 구천의 피나는 복수극에서 생겨난 단어 들이다.

오왕 부차는 방앞에 보초를 세워놓고 자신이 집을 드나들 때마다 “너는 월나라 구천이 너의 아버지 죽인 것을 잊었느냐”를 복창하게 했다. 부차는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회계의 싸움에서 월왕 구천을 사로 잡는데 성공한다.
이번에는 노예가 된 구천이 매일 쓸개를 핥으며 “너는 회계 전투의 치욕을 잊었는가”를 스스로 복창했다. 구천은 갖은 고생 끝에 힘을 쌓아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부차왕을 사로 잡아 한을 푼다.

이 두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적의 개념을 뚜렷이 했을 때는 에너지가 넘치는 지도자였고 국민들도 따랐으나 적을 평정한 이후로는 정치의 목표가 없어져 리더십의 대혼란을 겪는다.
적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인간에게 기대 이상의 에너지를 부여한다. 한일 축구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는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 선수가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에서 미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딴 적이 있었다. 우승 소감을 묻자 “미제의 털가슴을 쏘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말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와신상담과 대조를 이루는 단어에 ‘오월동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원수지간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배에 탔는데 위험에 처하자 서로 합심하여 협력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필요에 따라서는 적과도 협조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1938년에 있었던 미국의 조 루이스와 나치의 슈멜링간에 벌어진 ‘세기의 대결’ 권투시합 때 보인 백인들의 흑인 지지다.

히틀러가 슈멜링을 격려하면서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자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당시 미국 백인들은 흑인인 조 루이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루즈벨트 대통령 마저 조 루이스에게 “이봐, 미국이 강하다는 것을 독일에게 보여 줘야해. 이겨야 한다구”라고 당부했다. 결과는 경기 시작 124초만에 조 루이스가 슈멜링을 KO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조 루이스는 백인들에게도 영웅이 되었다. 이 권투경기는 흑인과 백인이 오월동주한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적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미를 인식하는 나라들이나 사람들이 있다. 적이 있어야 강해지는 타입이다. 호치민의 월맹도 사이공을 함락해 승리한 후로는 맥이 없다. 민주화된 러시아의 사회는 마피아, 살인강도등 각종 범죄로 말이 아니다. 군인들이 무기와 훈장까지 팔아 먹는 정도로 타락해 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주변의 적 때문에 국민들이 항상 단결해 있고 예술을 사랑하는 유대인이 최강의 군대를 갖고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러시아와 평화공존하는 지금 무엇을 이데올로기로 삼아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특히 반공을 목표로 삼아온 공화당의 리더십이 우왕좌왕이다. 북한을 상대로 대공미사일을 구축한다느니 하는 웃기는 정책도 후유증의 하나다. 클린턴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새 시대, 새 리더십”의 필요성을 등에 업고 있다. 만약 미국이 러시아와 전쟁을 치를 위기에 놓여 있다면 과연 클린턴이 대통령에 선출될수 있었을까.

시대가 사람을 만들고 리더를 탄생시킨다. 한반도에서 화해가 이뤄지고 남북대화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리더십도 달라질 것이다. 한국이라고 클린턴 스타일의 지도자가 탄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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