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졸부식 교육이 자녀 망친다

2000-07-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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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형<라디오서울 방송위원>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차례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한자교육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에게도 그리 낯선 한자성구는 아닐 성싶다. 자녀 교육에서 어머니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흔히 ‘가훈’이라 해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가며 인격 형성의 틀을 쌓아가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진 후의 이야기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대로 젖먹이 때부터 학교에 다닐 때까지 접촉이 가장 빈번한 상대는 어머니라는 점에서 자녀 교육에서 어머니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막중하다. 어머니들이 건전한 사고방식을 지녔으면 자연 자녀들도 합리적 사고방식을 지닌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신사임당과 이율곡 선생, 링컨 대통령과 훌륭한 계모의 예를 구태여 들 필요도 없이 동서고금을 통해 위인들 대부분은 훌륭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의 석학 버틀란드 러셀이 "앞으로 어머니의 지위는 변함이 없겠으나 아버지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어갈 것"이라고 말했듯이 요즘 남성들의 지위나 위치는 상대적으로 점차 위축되고 왜소화돼 가는 느낌이 든다. 새삼 어머니의 자녀 교육을 거론하는 것은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한국의 ‘졸부식 경제관’을 가진 어머니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변에 자식을 망치는 어머니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한창 뛰어 놀기를 좋아하는 나이의 어린 자녀에게 속셈, 피아노, 바이얼린, 미술, 태권도, 영어학원, 바둑교실 등 일곱가지 과외교육을 한꺼번에 시키는 극성 어머니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운 살림 가운데 여러 자녀들이 올망졸망 커가던 옛날과는 달리 자녀가 두명이라도 많다고 느껴지는 요즘 세태에 어머니들이 금지옥엽 같은 자녀들의 교육에 쏟는 열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무리하게 과외교육을 시킬 경우 자녀들의 자생능력이 퇴화된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또 어린이들에게 도가 지나칠 정도로 용돈을 주는 어머니들은 이같은 ‘졸부식 경제관’이 장래에 자녀의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어려서부터 큰 돈을 만지는 어린이들은 커서 일하기를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돈으로 인해 큰 실수를 저지르기 쉽고 끝내는 엄청난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부유층 가정에서 자녀에게 주는 용돈은 제한돼 있고 필요한 돈은 자신이 벌어 쓰도록 하고 있다. 중산층이나 상류층에서도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인 18세까지는 부모가 도와주지만 그 이후는 특별한 일이 아닌 한 자녀에게 그냥 돈을 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이라도 장성한 아들은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 자기 길을 가는 곳이 미국이다.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자녀에게 "집안 망신시킨다"며 다그치는 어머니는 미국에는 없다.

미국인들은 한인 부모와 달리 자녀 결혼식의 혼수감을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번 돈으로 조촐하게 인생을 출발하도록 하고 있다. 지식 주입보다는 인격 성장을 통해 자녀들에게 근로 의식을 키워주고 사회의 일꾼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게 미국식 교육이다.

요즘 한국의 20대, 30대 어머니 중에는 유별나게 성가시게 구는 자신의 자녀들을 나무라지도 않을 뿐아니라 나무라는 주위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어머니가 적지 않다고 한다. 어려서 주위에서 간섭을 하면 주눅이 들어 커서 큰 사람이 못된다는 미신 같은 어리석은 말을 과신하는 탓일까.

미국의 젊은 어머니들은 자녀가 부잡스럽게 굴면 몇차례 경고를 한 뒤 골방으로 데려가 따끔한 벌을 준다. 절제와 책임의식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아무리 어린이라 할지라도 주위사람을 번거롭게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공동사회에서 하나의 질서위반이다. 어려서부터 따끔하게 가르쳐 주어야 이웃을 의식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한인들이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바로 질서의식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올바른 자녀 교육이 바로 선진화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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