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을 초월한 곳

2000-07-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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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화<샌호제주립대학 교수>

어떤 이집트의 왕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늘 허약하고 아팠으며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한 점성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 점성가는 왕의 신하중 한 사람의 죽음을 예언했었고 정확히 그 시각에 신하는 죽었다. 왕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위험하다. 이 사람이 악마의 주술을 써서 그 신하를 살해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살려 두는 건 위험하다. 나한테도 같은 짓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왕은 점성가를 불러서 물었다. “나의 죽음에 대해 말해달라. 나는 언제 죽게 될 것 같은가?” 그 점성가는 왕의 얼굴을 보고 뭔가 위험스런 낌새를 알아채곤 무슨 도표 같은 걸 만들어 그것을 한참 연구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제가 죽은 뒤 일주일 후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자기의 의사들을 모두 불러 그 점성가를 돌보게 하였다. 최고의 음식들이 준비되고 모든 것을 갖춘 궁전이 그를 위해 새로 만들어졌다. 장안의 뛰어난 명의들이 단지 그를 돌보기 위해 모조리 불려왔다. 그리고 왕은 말했다. “그를 극진히 잘 돌봐주어라. 왜냐하면 그가 말하기를 그가 죽은 지 칠일 후에…”

그 왕은 매우 오래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점성가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성가는 타고나길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왕은 점성가가 죽은지 꼭 일주일 되던 날 죽었다.

심한 우울증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병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이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진찰을 받고 검사를 해 보았지만 사실 아무데도 아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매일 의사를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는 뭔가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남자는 자신이 뭔가를 들으면, 예컨대 텔레비전의 약품광고에서 어떤 질병 얘기가 나오거나 하면 곧바로 그 병을 앓는 것 같았다. 잡지에서 어떤 병에 관한 기사나 광고를 보면 금방 그런 증상에 감염되어 의사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의사가 남자에게 말했다. “좀 성가시게 굴지 마세요. 나도 당신이 보는 신문·잡지·텔레비전 광고를 수없이 보지만 괜찮아요. 당신은 그런 광고를 보면 다음날 어김없이 그런 병에 걸려 찾아오지 않습니까?” 남자가 비웃는 듯 말했다.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모양이군요. 당신이 뭐 그리 대단한 현자라도 되는 줄 아슈? 이 마을에 의사가 당신 하나만 있는 게 아니요.” 남자는 그 의사를 더 이상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병에 대한 광기는 여전했다.

그러다 얼마 후 남자는 죽었다. 많은 이가 그렇듯 죽기 직전 남자는 자신의 묘비에 새겨 넣을 말을 부인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그 말은 지금도 거기에 남아 있다. 묘비 위엔 대문자로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내가 옳았다는 걸 이젠 모두 아시겠습니까?”

마음은 교활하다. 마음은 자기합리화의 귀재다. 마음은 항상 스스로의 옳음을 강변한다. 마음은 불행을 행복이라하고 행복을 불행이라 한다.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 모든게 다 마음의 조작인데 그 조작이란 실체를 보는 건 ‘마음을 초월한 곳’에서만 가능하다던가? 여기 마음을 초월한 곳에 관한 피카소의 얘기가 있다.

피카소의 그림 한점이 1백만 달러에 팔렸다. 그림을 산 귀부인은 그것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감정받기를 원했다. 한 미술평론가가 말했다. “이 작품은 진품이 틀림없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내가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그는 피카소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귀부인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비평가와 함께 피카소를 직접 찾아갔다. 피카소는 그 그림을 보더니 이상한 대답을 했다. “이 그림은 진품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피카소의 애인이 놀라며 말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당신은 이 그림을 그렸어요. 이 비평가 선생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제 어떻게 그게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피카소가 말했다. “내가 이 그림을 그렸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오리지널이 아니다. 나는 과거에도 그것과 똑같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똑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을 뿐이다. 오리지널은 지금 파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나에겐 오로지 첫 번째 그림이 오리지널이다. 그것은 내 존재의 침묵으로부터 탄생하였다. 나머진 누가 그렸든 사본일 뿐이다. 오리지널은 철저한 무심으로 그려졌다. 나는 내가 뭘 그리는 지도 모르고 그렸을 뿐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릴 때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마음의 산물이지만, 첫 번째의 그림은 마음을 초월한 곳에서 탄생하였다.”

교활한 마음이 사라지고 침묵의 깊은 심연과 함께 하는 그 “마음을 초월한 곳”은 모든 걸 가능케 하는 우주의 자궁. 동요하는 이고우(Ego)가 차분히 가라앉은 그 본래의 진면목에서 예술혼과 깨달음이 잉태된다. 언제 머물꺼나. 그 텅빈 경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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