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혼의 시기.

2000-07-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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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의 세상읽기

▶ 권정희 편집위원.

지난 가을 나는 아주 특별한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암으로 투병 중인 50대 초반의 한 부인을 위한 파티였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의 생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 자녀들이 어머니가 생애중 가깝게 지냈던 친척, 동창, 교회친구, 이웃들을 모두 초대하고 한인타운의 한 호텔 연회장을 빌려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연배가 비슷한 그 부인의 남편은 쾌활한 모습을 보이려 애를 쓰다가 안되면 눈물도 흘리고 하면서 그날의 호스트 역할을 했다.

모두가‘마지막’을 의식한 그 자리에서 부인은 당당한 품위로 손님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몇주후 세상을 떠났다.

9개월쯤 전의 일이다. 그런데 며칠전 한 모임에서 그 부인의 남편이 곧 재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인의 친구가 전했다.


“우연히 식당에서 (그를) 만났는 데 결혼할 사이라며 옆의 여자를 소개하더군요. 여자는 참하고 괜찮아 보였어요. 그런데 나는 괜히 눈물이 나서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어요”

2-3년전 한국에서‘이혼해야 재혼하지’라는 연극공연이 있었다. 작품성은 모르겠지만 이혼이나 재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바뀌었는 지는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결혼, 이혼, 재혼같은 문제들이 이제는 사회적 관습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분명하게 개개인의 선택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혼한다고, 재혼한다고 지탄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런데도 배우자를 사별한 사람의 재혼 시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위에서 신경을 쓴다. 이혼은 이유야 어떠하든 당사자들의 결정인 반면 사별은 본인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헤어짐이라는 사실에서 사람들은 차이를 느낀다. 그래서 배우자 잃은 사람이 너무 일찍 재혼한다면 아무 상관도 없는 주위 친지들이 섭섭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친구의 일주기도 되기 전에 친구남편이 재혼을 해서 “너무 화가 난다”는 한 여성은 이런 말을 했다.

“혼자 되고나면 많이 외롭겠지요. 그래도 30년 같이 산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 법입니다. 그 사람의 흔적이 몸과 마음에서 다 빠져나갈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도리 아닐까요?”

우연히도 지난해 내가 아는 사람들 중 3명의 남성이 부인을 잃었는 데 그들 모두가 현재 재혼을 앞두고 있다. 그중에는 부부간 금실이 유별나게 좋아서 옆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부인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던 사람도 있다. 그의 재혼 소식을 들은 여성들은 하나 같이 “남자는 믿을 수가 없어. 때맞춰 건강진단 받고 열심히 운동해서 오래 사는 수밖에 없어”라며 웃었다. 웃으면서도 모두들 궁금해했다 - 여자들은 사별하고도 몇 년씩 혼자 사는 데 남자들은 왜 1년을 못 넘길까.

한 남성의 경험을 들어보면 이렇다.
“처음에는 식사하는 일이 제일 문제더군요. 아내가 맡아하던 조리, 세탁, 청소 같은 일들을 갑자기 배워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일들이야 곧 극복이 되지요. 제일 문제는 외로움인데 운동도 해보고 취미생활도 해보았지만 아내의 빈자리를 메울 수는 없었어요. 배우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되지 않더군요.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사는 생활이 너무 몸에 밴 것이지요”

그는 “남성이 육체적으로는 강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성에 비해 훨씬 불안정한 것 같다”고 덧붙엿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한국의 원로 국어학자인 이응백교수는 사별한 아내를 그리며 결혼50주년 기념문집을 냈다. “다시는/ 죽어도 님의 곁/ 안 떠나리/ 이제는 죽어도/ 님과 함께 있으리/ 그대 그림자/ 그대 따르듯/ 나도/ 그대 그림자 되어/ 죽어도 님의 곁/ 안 떠나리…”

먼저 간 아내·남편을 가슴에 담고 사는 것이 행복인 사람도 있고, 누군가가 빈자리를 메워야 삶이 건강해질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재혼을 할 것인가, 언제 할 것인 가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각자 자신이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길을 택할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때로 외로움에 너무 쉽게 항복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이혼이나 사별로 초래된 인생의 제2막이 풍성해지려면 자신의 삶을 객관적인 눈으로 돌아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경험자들은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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