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순진한 거짓말

2000-07-15 (토)
크게 작게

▶ 독자칼럼.

▶ 홍영남<달라스>

어느 노총각이 갑자기 결혼을 한다는 내용을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동호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 총각이 갑자기 결혼을 하려고 마음을 결정한 것은 애인이 앞으로 일년 이상을 살 수 없으며 그녀가 현재 병원에 입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신부의 부모님은 그 결혼을 승낙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고 신랑의 부모님 역시 결혼식에 참석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결혼을 하는 두 연인의 결혼식이 화려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예식장을 빌릴 형편이 안돼 친구가 미술 전시회를 하는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게 허락을 해주었고 신혼여행은 두 사람이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불꽃이 꺼질 때가 된 연인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행복하게 해주려는 총각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을 받은 그의 친구들은 두 연인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예정된 화랑으로 시간을 맞추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중 멀게는 대전에서 또는 용인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접어 두고 무리를 한 사람도 있고 개인적으로 희생적으로 시간을 내서 온 사람도 있었다.

하객들이 화랑에 가득 차고 시간이 되니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데 그들의 복장이 너무나 검소한 것이었다. 신부는 검정 바지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으며 얼굴은 창백해서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어느 하객이 안타까워서 신부가 앉을 수 있게 의자를 들어다주며 신랑에게 신부를 의자에 앉게 하라고 했다.


결혼식이 시작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 하객들에게 신랑은 갑자기 멋쩍게 웃으면서 “저 결혼 안해요”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신부가 얼마 살지 못하는 것이 이유인 걸로 생각하고 안타까워서 “그러지 말고 계획대로 해”하고 달랬다. 그런데 신랑은 계속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참석했던 하객들은 신부가 안됐다는 마음에서 이런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옳은지 답을 얻기 위해서 서로의 얼굴을 읽으려고 애썼다.

이어 노총각은 자신이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며 신부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선배의 미술전시회를 돕기 위해서 퍼포밍 아트 공연을 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것을 모르고 결혼식에 참석했던 하객 중 대부분은 친구로부터 이용당한 기분에 배신감마저 느끼고 미술 전시장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극소수의 친구들만 남아서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서 그를 이해해 주려고 노력을 하며 뒷수습을 하려고 했다.

결국 노총각은 그 일로 인해서 소속되었던 드라마 작가 동호회에서 자진 사퇴하고 남아 있는 회원들에게는 그들이 이해심이 부족했었던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노총각은 순진한 거짓말을 했지만 그로 인해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모든 인간형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힘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