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기있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2000-07-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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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미사일 방위시스템

▶ 탐 플레이트 (LA타임스 칼럼니스트)

베이징의 주중 미국대사관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 정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우선 순위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민해방군이 지키고 있는 이 지역은 각국 대사관들의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줄을 잇고 있는 이른 바 베이징의 외교특구다. 그 가운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바로 미국대사관이다.

미대사관은 건물 자체가 낡아빠진데다가 에어컨디셔닝을 비롯한 모든 시설들이 형편없어서 최악의 근무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새로 취임하는 대사들마다 기겁을 하고 의회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위한 예산 할당을 요청하고 있지만 의회 답변은 번번이 "예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중 미대사관 건물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의회가 돈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새 미사일 방위시스템 구축에 의회가 할당한 예산을 생각해 보자. 현재의 미사일 방위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따르면 최소한 600억달러의 돈이 ‘외국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기술적 도전’이라는 부문에 투입된다. 허물어져 가는 대사관은 돈이 없어 방치돼 있는 가운데 지난주 있었던 미국의 방위미사일 테스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발사 직후 빗나간 이 미사일 실험에만 1억달러의 혈세가 낭비됐다. 그 돈을 가졌더라면 세계 여러 곳의 대사관 건물을 수리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중국은 미국의 지출 습관을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미국이 레이건 정부 당시 스타워즈라는 공상적인 프로젝트에서 소련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지출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이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했던 과학자는 별로 없었다. 그동안 미사일 부문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기는 했지만 지금도 과학자들은 ‘총알로 총알을 맞힌다’는 개념에 회의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미사일방위 실험의 실패는 하찮은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핵미사일 방위 시스템이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우리는 실현 가능성도 불투명한 일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지출해야 하는가. 지난 70년대 이 개념이 처음 대두됐을 때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회의론을 내놓았다. 과학자들은 아무리 미사일 방위시스템을 완벽하고 정교하게 만들지라도 미사일 공격시스템에 대해 치명적 결점을 갖는다고 주장해 왔다.

스탠포드 대학의 천재 물리학자 볼프강 파노프스키는 이미 30년전 국방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 브리핑에서 미사일 방위시스템의 취약점을 지적한 바 있다. 파노프스키의 지적에 따르면 미사일 방위 시스템은 상대방의 기습공격, 동시다발 공격, 컴퓨터를 이용한 가짜공격 등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요즈음과 같은 열추적 핵폭탄의 시대에 적이 발사해 오는 여러 개의 핵미사일중 한두개라도 막지 못한다면 결과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파노프스키는 핵전쟁에서 아무리 완벽한 방위시스템도 상대의 공격을 100% 사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스타워즈 II 프로젝트의 계속 추진여부는 차기 대통령 손에 맡겨질 것이다. 현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직에 출마한 자신의 러닝메이트가 행여 상대방 공격을 받게 될까 두려워 스타워즈 프로젝트를 폐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용기 있는 대통령이라면 아무런 효과도 없고 오히려 아시아등 다른 나라들을 자극, 공격용 미사일 시스템 구축의 빌미만을 제공해줄 미사일 방위시스템을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직을 물러나면서 미국 방위산업계의 지나친 영향력 발휘를 경고했었다. 이제 클린턴도 아이젠하워의 본을 받아 쓸모 없고 돈만 잡아먹는 미사일 방위프로젝트를 과감히 집어던지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효과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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