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밀입국자와 미국

2000-07-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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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추기경이 시애틀에 들렀을 때 였다. 이웃도시인 캐나다 뱅쿠버의 한 젊은 한국신부가 김추기경을 만나기 위해 미국비자를 신청했더니 거절되었다. 신부는 미당국자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이웃도시에 며칠 다녀오는 것이니 비자를 내달라고 하자 "당신 정말 신부 맞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이 당국자 왈 "그럼 예수의 12제자 이름을 외워보라"고 했다. 어이없는 테스트였지만 비자가 너무 급해 이 젊은 신부는 예수의 12제자 이름을 다 대고 미국비자를 겨우 얻었다.

이 해프닝은 김수환추기경이 들려준 이야기다. 김추기경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신용을 잃었길래 이 정도가 되었는가. 우리도 뭔가 반성해야할 점이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캐나다의 뱅쿠버나 토론토공항에서 이민국관리들이 한국인에게 불필요한 것을 따지고 불친절하게 말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러나 캐나다와 한국이 무비자국으로 협정을 맺은 뒤부터 캐나다국경을 통해 미국에 밀입국하는 한국인이 급격히 늘어나자 이제는 "코리언"하면 출입국관리들이 무조건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은 불쾌한 경우를 종종 당한다.


무비자이기 때문에 캐나다에는 수많은 한국유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꿈은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하면 미국에 건너와서 공부하느냐다. 미국에 밀입국하기 위해 캐나다유학을 택한 학생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요즘 뱅쿠버에서 한국인 21명이 산길을 통해 미국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되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케이스는 운이 없어 걸렸을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성공적으로 밀입국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뱅쿠버한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보다 미국 밀입국이 더 극성스런 모양이다. 얼마전 토론토 국경지대에서 밀크탱크차가 미국쪽으로 넘어왔다. 이민국 직원들이 수상히 여겨 이 밀크트럭을 미행한 결과 밀크탱크에 수십명의 중국인이 숨겨져 있는 것을 적발해낸 사건이 있다. 동양인에겐 이제 캐나다가 미국 밀입국의 전진기지처럼 여겨져 캐나다정부가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무비자를 계속 허용해야할 것인가를 재검토하고 있다.

이번 캐나다국경 밀입국 사건에서 우리가 피부로 느낄수 있는 것은 한국의 국민소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밀입국하다 구속된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아니 미국이 그렇게 살기 좋은 나라인가"자문자답 하게 된다. 그리고 영주권과 시민권의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영주권이 없어 고생하던 올챙이 이민시절의 검소함과 각오를 까맣게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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