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잊혀진 한국전의 한국군

2000-06-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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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오

한국전이 발발하자 한국군이 궤멸될 것으로 예견한 사람은 트루만 당시 대통령이다. 그는 “한국군 사상자수로 볼 때 군의 저항 능력이나 저항의지가 박약하다. 한국군의 전면적 붕괴가 임박했다”고 말했다. 트루만의 이같은 판단이 미국의 신속하고 대대적인 개입을 가능케했는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한국군이 전쟁이 나자마자 힘없이 무너졌다는 인식이 보편화됐다. 아직까지도 영어로 된 한국전 기록에는 한국군이 세운 업적은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이는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잘못이다.
전쟁 당시 한국군은 숫적으로 열세였고 장비도 형편없었으며 훈련도 안돼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숫적으로 북한의 절반밖에 안된데다 중장비 면에서는 상대가 안됐다. 북한은 나치를 물리친 소련제 T-34 탱크를 242대나 갖고 있었으나 한국군에는 탱크도 대탱크용 화기도 없었다. 북한은 사정거리 17마일 짜리 곡사포를 172문이나 갖고 있었지만 한국군은 7마일짜리 91문이 고작이었다.

한국군은 초기에는 퇴각을 거듭했지만 곧 전열을 재정비해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0년 8월 한국군 숫자는 8만2,000명으로 4만7,000명의 미군보다 2배가 많았다. 인천상륙 작전 때도 한국 해병과 17연대가 참가했는데 이 사실은 대부분 미국측 자료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낙동강 전투 때 북한은 미군보다는 화력이 약한 한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하려 했다. 한국군 제1사단은 북한군과 맞서 많은 사상자를 내며 승리를 얻었는데도 이 사실 또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1952년에는 한국군이 최전선 전투병력의 3/4을 차지했으며 사상자의 53%가 한국군이었다. 한국군 사망자는 총 13만6,000명으로 미군 5만4,000, 기타 유엔군 3,600명을 압도하는데도 한국군의 기여도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힌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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