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선수들의 경쟁심

2000-06-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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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이규태 기자

“더 큰 스타가 기다리고 있단 말이지. 그래, 얼른 가보슈∼”

한인골퍼들이 늘다보니 이제는 대회 취재를 하다보면 이런 농담반, 진담반 투정까지 듣게 된다. "아, 한인선수들이 몇 명인데 다들 하는 것을 한번씩은 봐야 기사를 제대로 쓸 것 아니냐"며 웃어 넘기지만 선수들간의 경쟁의식이 경기장 안팎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 잘 어울리지도 않고 또 부모들조차 서로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그들사이에는 심지어 ‘왕따’까지 있다.

박세리와 김미현의 ‘썰렁한 관계’는 지난주 웨그먼스 로체스터 인터내셔널 대회서 둘이 같은 조에 편성되는 바람에 들통났다. 이틀간 같이 36홀을 돌며 눈길이 마주친 것은 단 두 번. 18홀을 모두 마치고 서로 악수를 나눌때 뿐이었다. 서로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 마당에 말할 시간이 어디있느냐"고 변명하지만 둘의‘대견한’모습을 보기 위해 골프장을 찾은 한인팬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던 순간. 한국 여자골프의 보배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좋은 경쟁을 펼치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이게 웬말인가.


사실 둘이 맞붙여 놓으면 말도 안하는 관계인 한인선수들은 이밖에도 많다. 좋은 매너로 항상 창찬 받는 맏언니 펄신도 예외는 못되며 올해 신인인 한인선수들간의 관계도 때로는 몹시 껄끄러워 보인다. 물론 오해도 있겠지만 라이벌 의식, 피해 의식 등 온갖 감정이 다 얽히고 섥혀 있으며 이들의 스토리를 듣다보면 누가 옳고 그르다는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져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쟁심에 불타지 않는 선수가 정상에 오를 수 없는 것이고, 등수에 따라 크나 큰 돈과 명예가 오가는 마당에 이들이 오로지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친할 것을 바란다는 자체가 무리라고 볼수도 있는 일이다. 개인종목에서는 다들 돌아서면 적인데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이제 스무살을 갓넘은 예민한 어린선수들의 행동이 오히려 솔직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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