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병현의 매력

2000-06-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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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세이

▶ 손영우 스포츠부장

요즘 김병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 나뿐 아니라 동료 친구들도 흠뻑 빠졌다. 병현이가 경기에 나온 다음날이면 병현이 이야기에 거들지 못할까 조바심을 낸다.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미국팬들도 병현이가 나오면 난리가 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깨라도 한번 두드려 주고 싶지만 그라운드로 내려갈 수도 없고... "벼엉영 킴" "벼엉영 킴"을 소리 소리 질러댄다. TV중계를 보다가 김병현에 보내는 미국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괜히 콧등이 시큰해질 정도의 감격을 느끼게 된다.

조그만 체구에서 빵빵 스트라이크를 꽂아대는 기막힌 투구에 미국 TV캐스트들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어메이징(amazing) 영 키드’, ‘언터쳐블(untouchable)’, ‘닥터 K’등 더 나은 최고의 수사를 찾지 못해 말문을 더듬거린다.


김병현에 대한 우리 사랑의 이유. 우선 김병현은 잘 던진다. 팀의 승리를 확실히 마무리해 준다. 특히 찰떡궁합인 ‘빅 유닛’ 랜디 잔슨과 짝을 맞춰 나오면 그날은 필승이다. 그리고 타자를 잡아도 시원한 스트라익 아웃으로 잡는다. 아무리 무서운 타자가 나와도 공은 스트라익 존으로 거침없이 들어간다.

배짱이 두둑하다. 13일 현재 올해들어 던진 31.1이닝 동안 탈삼진이 54개. 9이닝을 다 던졌을 경우 삼진을 잡는 비율이 경기당 15.63개다. 메이저리그 최상급투수로 지난해 탈삼진왕을 차지했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페드로 마티네스가 9이닝 경기당 탈삼진이 13.21개 였으니 김병현 앞에 ‘닥터K’라는 영광스런 칭호가 붙지 않을 수가 없다. 구원투수를 포함해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빌리 와그너의 14.95개가 최고이니 올해 김병현이 메이저리그의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높다! 닥터K 애칭은 굳었고, 벌써부터 올해 올스타로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김병현은 실로 어메이징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실력과 사랑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냥 잘하는 선수는 아무리 잘해도 관객이 모이지 않는다. 테니스에서 피트 샘프라스와 존 매켄로가 그 좋은 예다. "샘프라스 때문에 90년대 테니스가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유가 있다. 보리스 베커를 능가하는 폭발적인 서비스, 스테판 에드버그에 버금가는 발리, 안드레 애거시에도 밀리지 않는 강한 스트로크를 한몸에 담은 ‘완벽테니스’를 구사하며 지난 10년간을 압도해 왔지만 팬들은 오히려 그를 외면한다. 공은 기가 막히게 치는데 웬지 재미가 없다.

그에 비하면 80년대 매켄로는 심심하면 라켓을 코트에 내동댕이치는 고약한 성질머리와 신사답지 못한 매너를 보였지만 팬들은 그의 천재성과 개성을 높히 샀다. 17살 어린나이에 윔블든을 제패한 보리스 베커도 붐붐 서비스도 일품이었지만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투혼과 집중력으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샘프라스와 이반 렌들의 경기에서는 찾기 어려운 개성과 드라마가 매켄로와 베커의 경기에는 살아있다. 스포츠에서 관중들이 원하는 것은 개성과 스토리다. 아무리 우수한 상품이라도 그 상품에 개성과 스토리가 담기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홈런을 잘 치는 타자라도 한방이 꼭 필요할 때 병살타를 때린다면 가치가 없다. 관중, 고객들이 원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현은 스타 재목이다. 조그맣고 생긴것도 수수(?)하지만 김병현은 스토리를 생산해 낸다. 그동안 우리가 고팠던 이야기를 풀어내 준다.
밑으로 들어오다 타자 앞에서 마술처럼 휙 위로 솟구치는 공에 메이저리그 거포들의 배터는 중심을 잃으며 허공을 가른다. 조그만 김병현 앞에 거포들이 짚단 쓰러지듯 넘어간다. 김병현의 야구에서는 거대한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다윗의 통쾌함이 있다.

통쾌할 뿐 아니라 대담함, 개성, 신선함까지 담겨 있다. 메이저리그 공포의 타자들을 앞에 두고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는 일품의 배짱은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도 싱싱하다. 마이크 갖다대면, 한 동료의 표현을 빌면 ‘국민과의 대화 하듯’ 목청튀우고 머리부터 굴리는 섣부른 기성 메이저리거들과는 달리 생각하는 대로 진솔하고 성실하게 답한다.

김병현을 보면 21살 풋풋한 젊은이의 기개와 신선함, 진지함이 전이돼 온다. 세상살이 특히 기펴고 살기 어려운 미국이민살이에 실력과 용기, 풋풋함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스토리텔러로 김병현이 롱런해주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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