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직은 천직인가.

2000-06-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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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덕<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교수>.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선생노릇 하기가 힘들고 애를 태우는 일이기에 이런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잡아주는 가정교육도 어려워서 쩔쩔매는 어려운 세상에 별의별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한 군데에 모아놓고 하루종일 가르친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 하면서 자녀교육이 힘들다고 부모도 쩔쩔 맨다. 부모이니 자식이 말을 안 들으면 가끔 회초리도 들 수도 있겠지만, 선생은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매를 들었다가는 부모들에게서 소송이 걸려 들어올 것이니 아이를 바로잡아주는 기회를 회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끔하게 훈계도 할 수 없다. 아이의 인권을 존중하여주지 않는다고 비판을 받기 때문에 망둥이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를 훈계도 할 수 없이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교사가 교육을 할 수 없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어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아이들, 자기 멋대로 하는 아이들에게 선생인들 무엇을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말로 해서 듣지 않는 아이에게 좋은 말로만 타이르다보면 잔소리가 되어버리고, 선생님에게 버릇없는 말투로 대꾸하고 실랑이하는 판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선생으로서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학생의 방종한 행동을 보고도 슬쩍 넘겨 버린다. 질서가 무너져버린 학교에서 가르치는 위치와 동반되어야 할 권위를 잃어 버린지 오래다.

미국 이민 초창기 시절에 나는 대리교사로 일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반에 들어갔는데 바짝 마르고 괜히 실실 웃는 이상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옆에 있는 아이에게 집적거리고, 책상을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옮기면서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까지 그 아이를 닮아 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하고, 혼자 앉아 있게 하였지만, 도저히 수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수업도중에 일어서서 큰소리로 웃기도하고, 책상 위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고, 미친 아이같이 놀았다. 참고 참다가, 일어서는 아이의 머리를 누르면서 가만히 앉아서 있으라고 하였다. 그 순간 아이는 길길이 뛰면서 내가 자기를 때렸다고 엉엉 울면서 교실 밖으로 고함을 치면서 나갔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라고 당황한 사람은 나였다. 마치 동양여자인 내가 미국 문화를 몰라 몽둥이로 아이를 때린 것과 같은 장면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고함소리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나를 옆반 선생이 와서 위로하여 주었다. 그 아이는 원래 그런 아이라 하면서 혼자 난리 치다가 제물에 가라앉을 때까지 내버려두라고 하였다. 그러나 생전 처음 당한 일이었기에 내게는 너무도 쇼킹한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교직이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국에 왔지만 교직은 내가 이 땅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기에 교사 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밟으면서 대리교사를 하면서 미국학교 실정을 배우고 있었다. 그 아이사건 이후 다루기 힘든 아이들을 몇 명 더 대한 후 나처럼 인내심이 없고 심장이 약한 사람은 미국 중등학교에서 교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나 자신이 판단을 내려 버렸다.

그 아이의 일은 2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기에 지금 생각하여도 소름이 끼친다. 그때에는 그런 아이가 학교에 한 두명 정도 있었는데 요즈음은 한 반에도 상당수의 아이들이 주의 산만증이라는 병명까지 달고 숫자가 해마다 늘어난다 한다.

제자들의 고충을 들을 적마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할 입장이 못되기에 미안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이 너무 쉬운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한 일을 묵묵히 사명처럼 생각하며 일하는 나의 제자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학교라는 배움터가 점점 전쟁터로 변하여 가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면서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박봉으로 셋방살이도 간신히 할까 말까 하면서도 학생들을 위하여 학용품을 사면서 행복해하는 제자들을 대할 때마다 교직은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돈 돈 하는 세상에서 노고의 대가를 받지 못하면서도 기꺼이 우리들의 자녀들이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하여 교육시키는 일에 묵묵히 땀흘리며 일선에서 일하는 교사들. 그들이 바로 우리들의 영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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