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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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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다시 봤습니다"
LA 다운타운에서 의류업을 하는 A씨는 부산에서 중고교, 대학까지 마친 골수 PK다. 그런데 DJ정부 출범후 공직에 있던 형이 별 이유도 없이 물을 먹은 다음부터는 DJ가 하는 일이라면 거품 물고 성토해왔다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지난 4월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선거 잔꾀로 생각돼 불쾌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DJ가 트랩에서 내려와 김정일과 악수를 나누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가슴 벅차 더라구요. DJ를 욕해왔는데 누가 볼까봐 창피한 생각이 들었죠"
A씨는 그날 이후 ‘김대중’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DJ는 확실히 인물’이라는 것이다. DJ가 마음에 든 이유는 평양회담에서 시종일관 말을 아끼고 의젓하게 행동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손색이 없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DJ가 뭔가 보여주었다는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사실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구걸해서 김정일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런 소문이 나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DJ가 평양에서 김정일과 1대 1로 대면했을 때 북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저자세를 보일수도 있다는 추측도 많았다.
그러나 평양에서의 ‘김대중’은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평소에 달변이던 그는 김정일이 열마디 하면 한마디 정도, 그것도 간결하게 대답해 무게를 잡았다. 대통령 다웠다. 말 잘하는 DJ에서 듣는 DJ로 변신해 보인 것이다. "역시 정치 9단은 다르구나" 하는 노련함을 보여 주었다. 김정일이 박력있게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회담 그림으로 볼 때 DJ가 한수 위라는 인상을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DJ가 아니고 다른 대통령이 이번 평양회담에 참석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역대 대통령 누구의 얼굴을 대입시켜 봐도 김대중 대통령 만큼 남북정상회담에 어울리는 얼굴이 없는 것 같다. 정치인은 시대를 제대로 만나야 날개를 편다는 말이 새삼스러워진다.
그러나 DJ의 진짜 쇼는 이제부터다. 김정일은 말 한마디면 김대중 대통령과의 약속이 모두 실천되겠지만 남한은 민주체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더구나 구군부 세력등 보수세력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도 김대통령의 큰 숙제다.
DJ의 이미지는 이제 재탄생되어야 한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 편 만들기 위해 자민련에 미소를 보내는 제스처는 너무 째재해 보인다. 민주당을 탈당한다고 발표하고 정파를 초월한 대통령이 되는 제2의 깜짝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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