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정부 = 식모’ 인식 버려야

2000-06-17 (토)
작게 크게

▶ 학대말썽 한인가정 형사처벌 계기로 보니...

▶ 바쁜 현대가정 일손돕는 "직업 헬퍼"

한인타운과 주류사회 정치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찰스 김(KAC 사무국장)·김영옥(에드 로이스 연방하원의원 보좌관)씨 부부는 누구보다 바쁜 생활속에 4명의 자녀를 보란 듯이 잘 키우고 있다.

그 비결은 11년이나 함께 살며 가족같이 돼버린 가정부 이네즈(44)의 도움때문. 히스패닉이지만 미역국도 끓이고 김치를 한인보다 잘 먹는다는 이네즈는 5, 8, 10, 12세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안심하며 맡겨놓고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도우미라고 김씨 부부는 자랑했다.

안과의사 박선민씨와 마크 김판사 부부는 아이들 학교 픽업하고 저녁식사 준비를 도와주는 파트타임 한인 가정부를 고용하고 있다. 오후 2시부터 8-9시까지 쌍둥이인 9세 아이들을 돌봐주고 간단한 집안정리와 설거지등의 일을 해주는데 파트타임 가정부라 여러 면에서 부담이 적고 "엄마보다 메뉴가 다양해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박선민씨는 전했다.


치과의사 김범수·재경씨 가정은 큰 딸 용주가 태어나던 94년부터 5년동안 과테말라 출신의 입주가정부와 함께 살았다. 아이들 어릴 때는 한 침대에서 데리고 자기도 했던 정 많은 이멜다는 그 5년동안 열심히 돈을 모으더니 작년말 "고향에 새 집을 지었다"며 김씨네와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지금은 출퇴근 한인가정부를 고용하고 있다는 김씨는 "이멜다는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이 통하는 좋은 가족이었다"고 회상했다.

얼마전 팔로스 버디스의 한인 가정에서 가정부를 학대해 가장이 형사처벌된 케이스가 있었다. ‘식모’ 문화권 속에서 살아온 한인들이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가정부를 직업인의 한 사람으로 존중하기란 쉽지 않은 듯 하다. 특히 불법체류자나 타인종 가정부의 경우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혹사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한 가정부, 혹은 메이드(maid)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도 요즘은 파출부가 큰 소리치는 시대라고들 한다. 따지고 보면 아쉬운건 집을 비워놓고 나가는 주부들. 대신 아이들 키워주고 살림 살아주는 가정부는 바쁘게 사는 현대 가정의 일손을 덜어주는 직업 헬퍼인 셈이다.

매일 한국일보 안내광고란에는 ‘입주 가정부 구함’ ‘출퇴근 가정부 구함’ ‘아기 보실 분’ ‘파타임 파출부 구함’등의 광고가 20-30여개씩 실린다. 그만큼 가정부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 사실 수입이 괜찮은 맞벌이 부부치고 가정부나 메이드를 둬보지 않은 집은 얼마 안 될 것이다.

나성가정부소개소의 다이앤 신씨에 따르면 소개한 집에 갔다가 3-4일만에 다시 돌아오는 가정부들은 대개 "식모라고 무시하는 태도"를 못 견뎌 나온 사람들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옛날 한국식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진 한인들이 적지 않아 안타깝다"는 신씨는 되도록 양쪽의 입장과 분위기에 맞춰서 소개하고 있으며 가정부를 보낼 때 주의사항이나 아기 보는 법등에 대해 구두로 알려준다고 말했다.

찰스 김씨도 "한인들의 가정부 고용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서 금방 온 사람들이나 나이 든 1세들이 계급의식을 갖고 ‘사람 차별’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 만큼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주면 피고용인도 지성으로 잘 하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 그는 "한인들이 히스패닉 차별하는 것은 그들도 느낌으로 다 알기 때문에 모이기만 하면 코리안들 욕한다는 소리도 듣는다"고 말했다.

가정부와 주부의 궁합이 잘 맞으려면 서로간의 요구가 충족돼야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고용주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가정부는 어떤 작업환경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전문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부의 입장에서 좋은 가정부를 구하려면 인터뷰를 많이, 까다롭게 하라고 박선민씨는 권한다.

지금의 가정부를 만나기까지 60회 이상 인터뷰했다는 박씨는 9년전 쌍둥이를 갓 낳은 후 레지던트과정을 하면서 3년간 히스패닉 입주가정부를 고용한 적도 있는데 인터뷰중 "밤에 아기 때문에 일어나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무조건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 보는 일로 돈을 받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이 아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편을 겪지 않으려는 태도 자체가 비전문적이고 인정머리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