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 공동 선언문과 ‘김정일의 변화’

2000-06-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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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사설

‘남북 공동 선언문’이 평양회담에서 채택되었다.

이 선언문은 한반도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간의 합의를 문서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으로 시작된 전문 자체가 상호체제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깊다.

5개항으로 이뤄져 있는 ‘남북 공동 선언문’은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까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연방제안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며 ▲8·15 즈음하여 이산가족 상봉과 미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문화 체육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협력하며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빠른 시일내 대화를 갖는다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순안공항에서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극적인 만남에 비해 ‘남북 공동 선언문’의 내용에 극적인 요소가 약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유지에 관한 구체적인 표현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사실 이번 회담에서 남한측의 마지노선은 이산가족 재상봉 문제였고 북한측에서는 통일문제였다. 이산가족 문제는 한국측으로 볼 때는 인도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나 북한에게는 자유의 바람이 스며 들어 체제를 흔든다는 점에서 안보차원의 문제로 취급되어 왔다.

71년 적십자 회담으로 시작된 이산가족 문제가 29년간이나 협의만 계속되고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것은 이 문제가 북한에게는 가족상봉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통일문제는 남한의 기피사항으로 북한이 이 의제를 끄집어 낼 때마다 연방제와 주한미군 철수를 들고 나오기 때문에 골치를 앓아 왔다. 이번 공동 선언문 1항에서 통일문제를 언급하고 2항에서 이산가족의 재상봉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북한 체면을 살려 주면서 한국측이 실리를 취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사실 7·4 공동성명 때도 한국 국민은 흥분하여 통일이 곧 다가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남북이 모두 7·4 공동성명을 자신의 체제 강화에 이용했다. 남쪽은 유신체제, 북쪽은 주석체제가 마련되어 전보다 더 적대적인 관계로 악화되었던 뼈아픈 기억을 우리는 갖고 있다. 또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불가침 원칙과 남북교류에 관한 합의가 명시되어 있었으나 선언에만 그쳤고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더 고조되었었다.

따라서 우리는 평양회담에서 발표된 ‘남북 공동 선언문’의 내용은 상징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실천의지다. 그의 남한을 바라 보는 시각에 변화가 일어나야 남북관계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본다. 평양에서 열린 각종 의전행사에서 누구나 느꼈겠지만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위치는 절대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수 있었다. 따라서 북한이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걸맞는 액션이 계속 따라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축에서 남한과의 개선을 고려해 왔으나 이번 공동 선언문에서 “우리 민족끼리”통일문제를 해결하자는데 합의한 것은 이 선언이 한민족 자주선언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도약으로 볼수 있다.

남북관계는 국가간의 외교관계로는 설명할수 없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선언문이나 협정의 문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물쇠를 푸는 상호신뢰가 필수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태도에서 그의 관계개선의지를 읽을수 있었으며 ‘김정일의 변화’ 가능성을 느낄수 있었다. ‘남북 공동 선언문’이 역사의 전환점이 되느냐의 여부는 내용으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김정일 변화’와 함수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때 전체 그림이 떠오를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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