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나야 결혼도 하지요”.

2000-06-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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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시즌 답게 요즈음 남가주의 날씨는 눈이 부시게 화창하다. 주변에서 결혼소식들이 들려오고, 신랑신부가 상기된 표정으로 전하는‘사랑 이야기’는 날씨만큼 상큼하다. 공중에 풋풋한 사랑의 기운이 감도는 듯 들뜬 이 계절에 샌디에고에서 한 독자가 전화를 해왔다.

“한인사회에‘젊은이의 광장’ 같은 모임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 사귈 기회가 너무 없어요”

50대의 이 주부는 서른살이 된 딸의 결혼문제를 걱정했다. 밑의 남동생은 결혼을 했는 데 맏이인 딸이 결혼을 못해 “가슴에 항상 묵직한 바위가 얹힌 것 같다”고 말했다.

“후회되는 게 많아요. 아이가 결혼 못한 게 내 불찰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두가지를 후회했다. 딸을 너무 묶어둔 것과 ‘한인이라야 하고, 집안·학교 좋아야 하고, 능력있고 성실해야 하고…’너무 많은 조건들로 딸에게 압박감을 준 것이었다.

“80년대 중반 이민와서 비즈니스를 했어요. 미국을 너무 모르다 보니 맏이에게 의존하게 되더군요. 대학도 가까운 데로 가게하고 휴일이면 가게일을 돕게 하고… 게다가 딸아이니까 불안해서 교회 행사든 학교행사든 꼭 남동생을 따라 붙여 혼자 못다니게 했어요”

그래도 중국계, 백인등 쫓아다니는 청년들이 있었지만‘타민족은 절대 안된다’고 펄펄 뛰며 말리고, 조건 따져 사람 고르고 선 몇번 보고 하다보니 어느 틈엔가 딸의 나이가 서른을 채우고 말았다고 했다.


1.5세, 2세들의 결혼문제가 한인사회의 걱정거리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후반이지만 요즘은 부쩍 서른 넘은 처녀 총각들이 많다. 몇년 전 남가주한인의사회 회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미혼남녀 만남의 파티를 열었던 수 권씨도 같은 생각이다.

“서른 넘어 결혼 안한 2세들이 주위에 수두룩해요. 어머니들 걱정이 대단한데 아무도 손을 못 쓰고 있어요. 같은 지역에서 자라도 대학, 직장 따라 제각각 흩어지다 보니 아이들끼리 서로 연결이 되지를 않아요”
무턱대고 좋은 색시감·신랑감 찾아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서로 만날 기회라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는 생각에 파티를 열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성과는 없었다.

“여성단체나 동창회중 비슷한 파티를 여는 데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른 지역 얘기도 들어보면 부모가 주축이 된 모임은 한계가 있더군요. 서로 아는 집 자녀라는 것이 부담이 돼서 오히려 선뜻 사귀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짝짓기’파티라는 데 대한 거부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짝짓기’‘결혼’이 너무 강조되지 않고 젊은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며 사람을 관찰하고 사귈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한데 그 방면에서는 재일동포사회가 많은 경험이 있다.

자녀 결혼문제로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고민을 해온 재일동포사회는 70년대 말부터‘큐피드 세레모니’‘젊은이의 만남’‘브라이다루 파티’(Bridal Party)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미혼남녀 모임을 열어왔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고국여행을 겸한 3박4일의‘부라이다루’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도쿄의 민단 중앙본부 주최로 1년에 몇차례씩 열리는 데 보통 60-80명이 참가해 많게는 16쌍이 결혼에 성공하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시간을 두고 상대방을 관찰하고 사귈 수 있는 여건이 성공의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민단이 미혼남녀 결혼문제에 기울이는 정성은 대단하다. 결혼추진 전담부서를 두고 처녀 총각의 사진, 신상명세, 바라는 타입을 컴퓨터에 입력시켰다가 비슷한 타입을 찾는 사람이 오면 소개해주는 데 입력된 숫자가 거의 8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최근 남가주청년사역자회, 성바실중앙천주교회 청년부, 크리스천가정선교원등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미혼남녀 만남의 행사가 하나 둘 생겨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대상이 너무 제한돼 있다. 한인회같은 봉사기구가 커뮤니티 차원에서 미혼남녀의 만남을 추진하는 장기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부모들의 근심을 덜어주는 일, 그 보다 더 좋은 커뮤니티 봉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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