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인 원정대 이민 120주년 맞아 담대한 도전
▶ 2개월반 동안 시속 5노트 하루 140마일 전진
2개조로 24시간 항해… 위성통신 등 안전 완비
태평양 횡단 요트 원정대 어떻게 항해하나‘미주 한인요트클럽’ 회장 남진우(62)씨가 이끄는 4인의 원정대가 지난 4일 LA 인근 마리나 델레이를 출발, 하와이를 거쳐 이민 선조들이 미국 상선 갤릭호에 몸을 실었던 인천까지 이르는 대항해에 나섰다. 미주 한국일보가 미디어 스폰서로 함께하는 이 항해는 총 거리 9,900여마일에 두달 반 정도가 소요되는‘대장정’이다.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선조들의 항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정대의 담대한 도전이 그동안 어떻게 준비됐고, 어떻게 항해가 이뤄지는지 종합했다.
항해에 나선 ‘이그나텔라호’ 위로 태극기와 미주 한국일보 사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박상혁 기자]
■ ‘이그나텔라호’ 스토리
원정대를 싣고 태평양을 횡단할 요트는 1988년도에 제작된 ‘이그나텔라호’다. 남진우 대장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요트 제작업체 타야냐에서 만든 이그나텔라는 길이 37피트, 중량 3만2,000파운드 대항해용(blue water) 선박이다. 요트 사이즈는 중간급이지만 중량이 무겁고 안전성이 높아 대양 횡단에 자주 사용된다. 이번 항해를 앞두고 남 대장은 5만달러의 사비를 들여 돛(sail)과 디젤 엔진, 배 밑바닥 등을 교체했다. 풍력 발전기와 솔라 발전기도 새로 달었다. 항해 도중 바닷물을 정수해 식수와 샤워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워터메이커는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이마트 아메리카가 후원했다. ‘이그나텔라“(Ignatella)라는 선박명은 남 대장의 가톨릭 세례명인 ‘이냐시오’(Ignacio)와 부인 ‘스텔라’(Stella) 김씨의 이름을 합쳐 지었다.
■ 대장정 항로는
지난 4일 마리나 델 레이를 떠난 이그나텔라호는 거친 파도와 세찬 바람을 뚫고 시속 5노트(5.75마일), 하루 130~140마일의 속도로 930마일 떨어진 바하 캘리포니아 끝자락까지 남진 중이다. <항로 그래픽 참조>
이후 원정대는 서쪽으로 항로를 돌려 한인 이민사가 시작됐던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한다. 바하 캘리포니아 남단부터 하와이까지 거리는 대략 3,060마일. 4월 초순 무렵 하와이에 도착한 원정대는 한인 이민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여있는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을 방문하고, 이민 초기 한인 노동자들의 가정교회로 시작한 올리브연합감리교회(김배선 목사)의 안내로 한인 이민사와 관련된 여러 사적지도 둘러볼 계획이다.
하와이에서 다시 출발한 원정대는 3,700마일 거리에 있는 괌이나 사이판 중 한 곳을 들르기로 했다. 두곳 모두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으로 끌려 와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한국인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5월 초 원정대는 제물포항을 출발했던 이민 선조들이 미국 상선 갤릭호로 갈아 타기 위해 잠시 정박했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한다. 괌 혹은 사이판에서 오키나와 해협을 거쳐 나가사키까지 항해 거리는 약 1,570마일. 나가사키를 출발한 원정대는 대한해협을 통해 175마일 떨어진 부산항에 먼저 정박한다. 남진우 원정대장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마지막은 최종 종착지인 인천으로가는 항해다. 남해안 다도해를 둘러보며 서해안을 따라 서서히 북상 470마일 떨어진 최종 목적지 인천에 5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도착, 두달 반에 걸친 대장정이 마침표를 찍게 된다. 미주 한인 이민사의 출발점이자 한국이민사 박물관이 위치한 인천광역시(유정복 시장)는 원정대 도착에 맞춰 대대적인 공식 환영행사를 준비 중이다.
■ 안전항해 준비는
태평양 횡단 과정에서 성공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원정대의 안전 항해다. 다행히 원정대가 대장정에 나선 3~4월은 무역풍이 뒤에서 밀어 줘 태평양 횡단에 가장 적합한 시즌이다.
항해 중 외부와 수시로 교신해야 하기 때문에 원정대는 성능이 우수한 통신장비를 추가 구입했거나 후원받았다. 요트에 이미 켄우드 무전 시스템이 장착돼 있지만 선박과 선박, 선박과 육상간 자동 송수신 장치인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새로 설치했다. 외부와의 원할한 교신을 위해 원정대는 LA공항 조업사인 APS 백영주 회장으로 부터 위성전화를 기증받았다.
‘나홀로’ 태평양 횡단에 나섰던 강동석씨에 따르면 항해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폭풍도, 무풍도 아닌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강씨는 “이번 항해에는 남진우 대장 등 4명이 동행하는 만큼 가장 큰 적인 외로움과의 싸움은 큰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 횡단 항로 중에서 제일 어려운 구간은 일본 오키나와 해협을 통과하는 구간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키나와 해협 인근은 화물선과 어선 등 수많은 선박들이 오고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비해 4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항해 내내 2명씩 조를 이뤄 24시간 요트를 운항하기로 했다. 재외국민들의 안전 차원에서 LA총영사관 박민우 영사는 “조난 등 비상사태가 발생시 미국 구조당국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가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4인의 원정대는 누구
남진우 대장
도 유 대원
조셉 장 대원
박상희 대원
태평양 횡단 원정대는 남진우 대장(63)을 비롯해 도 유(69), 박상희(54), 조셉 장(49) 등 4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부산 출신으로 미주 한인요트클럽 회장이기도 한 남진우 대장의 총 항해시간은 3,000 시간에 가깝다. 3년 전 한인으로는 드물게 연방 해안경비대에서 발행하는 선장 라이센스를 취득했을 정도로 실력파 요트맨이다. 지난 1990년 ‘전설’ 강동석씨가 단독 횡단에 도전했을 때 그의 항해 시간은 실습 시간을 포함, 50시간에 불과했었다.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난 남진우 대장은 1979년 LA로 이민 와 라구나 칼리지 오브 아트&디자인에서 회화를 전공한 예술가다. 2007년부터 취미로 목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목선을 만들다 보니 배가 움직이는 원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1년 무턱대고 1988년도에 제작된 중고 요트를 구입했고, 2013년 미주 한인요트클럽을 결성했다. 2017년에는 태평양 횡단 연습을 겸해 롱비치에서 시애틀까지 요트를 타고 단독 항해에 나섰다. 맞바람과 너울성 파도에 맞서 결국 70일만에 왕복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미주 한인요트클럽 회원인 도 유 대원은 남진우 대장의 태평양 횡단 계획을 듣고 제일 먼저 원정대에 합류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제물포 고교를 졸업한 유 대원은 1984년 이민 직후 요트 세계에 입문한 최고참이다.
어린 시절 인천에서 자란 조셉 장 대원은 이라크 파병 미군 출신이다. 이그나텔라호가 정박해 있는 마리나 델 레이에서 패들 보트를 타다가 남 대장과 인연을 맺고 요트에 입문했다. 군 복무시절 경험을 살려 항해 중 통신과 촬영을 담당할 계획이다.
서울에 사는 박상희씨는 뜻 깊은 태평양 횡단에 합류하기 위해 지난 2월 초 미국으로 건너 왔다. 요트 경험은 없지만 워낙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금세 적응했다. 수영실력은 거의 선수급 수준이다.
원정대의 실질적인 대장은 남진우씨의 부인 스텔라 김씨다. 원정대원들은 “스텔라씨의 내조와 결단이 없었다면 태평양 횡단 도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UN 소속 의사 출신으로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의술을 펼쳤던 마틴 곽씨는 원정대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전공을 살려 출항 전 대원들의 건강을 꼼꼼히 체크하고 상비약 등을 준비했다.
남진우 원정대장은 “항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인이나 단체, 기업에서 큰 도움과 응원을 받았다”면서 “이민 120년 동안 축적된 한인사회의 눈부신 발전상을 조국에 널리 알리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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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