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의 진통제’ 펜타닐…해독제까지 비치

2022-10-20 (목) 12:00:00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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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청소년 마약·약물 남용 실태

▶ 교내외 사망 잇따르자 응급처치 안내, 테스트 키트 배부…학부모들 전전긍긍

‘죽음의 진통제’ 펜타닐…해독제까지 비치

남가주 지역에서 학생들의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비롯한 각종 마약과 약물 남용이 심각한 상태다. 지난달 15세 여학생이 숨진 할리웃 지역 번스타인 고교에서 학생들이 사망 학생을 추모하고 있다. [로이터]

고교생 딸에게 학교에 펜타닐 테스트 스트립과 약물 해독제가 배치돼있다는 말을 들은 유니스 강씨는 아연실색했다. 강씨는 “알약을 먹거나 알록달록한 약을 주고받는 학생들은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학교에 해독제까지 있으니 아이들이 더 쉽게 펜타닐 등 마약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남가주에서 펜타닐 중독 사례가 늘면서 청소년들의 약물 과다복용 실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지난 14일 번스타인 고교에서 17세 남학생이 약물 과다 복용 증세로 병원에 후송되었다. 발견 당시 교직원이 약물 해독제인 날록손(상표명 Narcan)로 응급 처치를 한 덕분에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번스타인 고교 학부모들은 한 달 전 15세 여학생이 펜타닐이 함유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채 화장실에서 발견됐던 악몽을 또 떠올려야 했다.

현재 LA 통합교육구에 이어 LA 도서관에도 마약 해독제가 비치되어 있다. 이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복용해 숨지는 학생이 잇따르고 검문검색, 주택 압수 수색을 통해 수십만정의 펜타닐이 연이어 적발 압수되면서 펜타닐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LA 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으로 학부모들의 우려는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마약 해독제 나르칸과 펜타닐 검사지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지난 한달 간 LA통합교육구에 보고된 펜타닐 과다복용 학생 수는 10명에 달한다. 지난달 13일 할리웃 헬렌 번스타인 고교에서 15세 여학생이 사망했고 지난달 30일에는 플러튼의 트로이 고교에 재학 중이던 17세 여학생이 파티에 다녀온 후 의식을 잃었다. 지난 6일에는 우드랜드 힐스 출신 고교 야구선수였던 17세 남학생이 펜타닐 함유 약물 과다 남용으로 숨졌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엘 카미노 리얼 고교)로부터 약물 과다 남용으로 숨진 학생에 대한 편지를 받았다는 박 모씨는 “펜타닐에 대해 뉴스로만 접하다가 막상 아들 학교에서 학생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괜히 어울리는 친구들을 유심히 보게 됐다”며 “학교 내에서 약물을 사고파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어 경악스러울 지경”이라고 발혔다.

지난 8월23일 빅토빌에서 18세 생일을 하루 앞둔 남학생이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숨진 사고와 관련해 18세 소년이 오피오이드를 판매한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고 샌버나디노 카운티 검찰이 밝혔다. 할리웃 번스타인 고교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15세 소녀에게 알약을 판매한 16세 고교생과 일당도 경찰에 의해 체포된 상태다. 이들은 펜타닐의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펜타닐을 판매해 인명보다 이익을 취했다며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이 학교에서 주의를 주거나 가르치는 내용과 상관없이 마약을 사용할 수 있다며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10대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펜타닐 과다복용 및 불법 매매 행위가 증가하자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펜타닐 집행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마약단속국(DEA)와 협업해 알록달록 무지개 색상의 알약에 대한 특별주위보를 발령했고 가주 검찰은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 상태다.

특히, LA 커뮤니티 헬스 프로젝트 직원들은 사람들이 마약에 완전히 취하기 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나르칸과 펜타닐 검사지를 배포하는 중이다. 이들은 부모와 아이들이 개인적으로도 나르칸을 휴대할 것을 권고하며 펜타닐 테스트 스트립이란 약품에 펜타닐이 함유돼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검사 키트로 테스트 스트립을 올바르게 사용할 시 약물 과다 복용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사협회(JAMA)에 청소년 약물사용실태 보고서를 발표한 UCLA연구원 조셉 프리드먼은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14~18세 청소년 수가 2배 늘었고, 지난해에는 20% 더 증가해 1,15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 복용은 주로 타인과 교류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며 그는 “10대 약물 사망률 증가는 위조 알약에서 점점 더 많이 발견되는 불법 펜타닐 때문”이라며 “위조 알약이 전국에 퍼지고 10대들은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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