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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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강종권 이비인후과•성형외과 전문의

2015-09-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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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한 시술 정평...“만나면 안심되는 의사 되고파”

강종권(52) 이비인후과와 안면성형 전문의는 섬세하고 정교한 시술로 명성이 높다. 한인사회에서 20년 넘게 ‘환자의 신뢰, 꼼꼼한 시술, 완벽한 수술 후 관리!’ 등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환자사랑은 남다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가장 안전한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수술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에 몰두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사로서 친절과 전문성을 갖추고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상담할 때는 환자의 생활과 환경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모든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이다. 그리고 환자의 몸과 살을 자신의 몸과 살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교육


그는 1963년 서울 태생이다. 2남 중 장남. 북한이 고향인 아버지는 약사였다. 어머니는 장남인 그에게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습관을 길러주셨다. 그 덕분에 9세인 초등학교 때 가족들과 이민 왔지만 남들보다 적응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도 한인 1.5세들처럼 언어와 환경 등으로 학교생활이 어려웠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어려운 이민생활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보다 나은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꼈기에 그들과 경쟁을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몸이 아파도 학교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전 학년을 개근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중3을 월반하고 뉴욕의 명문 스타이브센트 고교를 졸업했다. 그 후 컬럼비아 대학과 마운트사이나이 메디컬 스쿨을 졸업했다.

2년 동안의 외과 레지런트 생활을 마치고는 SUNY 버팔로에서 3년 동안 이비인후과를 그 후 에모리 대학에서 안면 성형외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그가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증을 물론 안면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까지 갖고 있는 이유다.

그는 “어린 시절 몸에 익힌 어머니의 교육덕분으로 나보다 나은 학생들 틈바구니 사이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내공을 쌓은 것 역시 어머니의 공이 크다”며 자신의 삶의 방식이 어머니의 교육덕분임을 거듭 강조했다.

눈썰미, 손재주, 세심하면서 꼼꼼한 성격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동차 매니아다. 자동차의 성능보다는 디자인 때문이다. 특히 유럽과 이탈리아 자동차의 디자인에 매료되어 있다. 자동차를 보면서 디자이너들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디자이너의 의도를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본다. 무엇보다도 자동차 모델별 디자인 특성을 눈으로 그려낼 정도다. 그만큼 그의 눈썰미가 좋다는 것이다.

물론,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동차 매니아다. 모든 디자인의 요소인 조화와 비율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서재엔 자동차 매거진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동안 단 한 권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그에겐 가장 소중한 취미인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전쟁 역사에 관심이 많던 그는 플라스틱 모형 만들기를 좋아했다. 먼저 비행기를 만들고 탱크도 만들었다. 여러 종류의 비행기와 탱크가 사용된 전쟁사도 익히며 만들기에 열중했다. 나중엔 군인 모형들도 만들었다. 군인을 만들 때는 색깔도 디테일하게 칠했다. 남들과 다른 손재주를 타고났던 것이다.

그의 성격은 매우 정서적이고 낭만적이다. 감정도 풍부하다. 그러면서도 매우 섬세하고 꼼꼼한 편이다. 물론, 전문의로서 지적인 자신감도 매우 강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무기는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그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여 정확한 진단과 확실한 치료를 할 수 있는 현재의 발판은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갖추고 있던 눈썰미, 손재주와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야말로 이비인후과와 안면성형외과 전문의가 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전문의가 된 이후에도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시술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 셈이다.

나는 럭키 맨

그는 스스로를 ‘럭키-맨’이라 생각한다. 우선 좋은 부모가 있어서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열심히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셨다. 약사인 아버지는 이민 와서 열심히 공부해 약사면허를 취득하셨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으니 행운이라고. 열심히 공부한 만큼 좋은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 여긴다.

약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대진학을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 레지던트 시절 응급실에서 만난 40대 부부도 행운의 메신저로 여긴다. 아내의 찢어진 얼굴치료를 곁에서 지켜본 남편이 자신에게 훌륭한 성형외과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칭찬을 받아, 이비인후과뿐 아니라 안명성형외과도 수련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아내와 3년 동안의 연애를 한 후 1989년 결혼한 것도 그에겐 행운이다. 언제나 긍정적이며 상대를 배려해주는 성격의 아내는 꾸준히 디자이너 활동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뒷받침을 하여주는데 고마움이 있다. 각자 전문분야의 길을 걷고 있는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2녀1남의 자녀들을 한마음으로 키우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냉면인 것도 행운으로 여긴다.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아버지가 교회와 영화구경을 갔다 올 때는 꼭 냉면을 사주셨다. 그러니 냉면에는 맛뿐만 아니라 아버지와의 추억도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21년의 세월 동안 병원을 찾아 준 5만여 명의 환자들도 행운으로 여긴다. 자신을 믿고 꾸준하게 병원을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의사협회 활동을 통해 무료진료와 의대진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등을 마련하는 데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한인 1.5세로서 전문의로소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퀸즈 지역에서 유일한 LIJ-North Shore Hofstra 의대병원의 이비인후과와 안면성형외과 임상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것 역시 행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행운이라 여기지만, 최선을 다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풍부한 시술경험과 실력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휴머니티가 살아있고 자기 일에 열정적이며 삶을 사랑할 줄 알기에 환자들이 사랑하는 의사인 것이다.

만나면 안심이 되는 의사

그는 이비인후과와 안면성형외과 두 개 진료과목을 전공으로 지난 1994년 7월 개업했다. 그동안 이비인후과의 각종 어려운 시술과 더불어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성형으로 신뢰를 쌓았다.
그는 자신만의 개성 없이 유행만 따르는 성형은 지향하고 있다. 단순히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똑같은 아름다움은 진짜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과 욕심보다는 충분한 상담과 수술 후 교정이 가능한지 아닌지 등을 환자 스스로 인지하고 수술 후 만족도를 높이도록 하고 있다. 그가 자연스럽고 인상은 변하지 않는 성형을 추구하는 이유다.

그는 치료를 제대로 하는 것은 기본이며 환자의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것이 좋은 의사라고 한다. 치료뿐 아니라 설명을 잘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지나친 성형에 대해서는 환자에게 알려준다. 다시 말해 수술하겠다고 찾아오는 환자를 무조건 받지 않고 환자가 왜, 어떤 수술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하게 분석한 다음 필요한 경우에만 수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병원은 한번 찾아왔던 환자가 가족을 데리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병원, 직원들이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는 병원, 의사가 자신의 가족을 추천할 수 있는 병원이다. 그리고 좋은 의사는 정확한 진단으로 확실한 치료를 해줌으로써 불안을 잠재우고 안심과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좋은 의사는 만나면 안심이 되는 의사가 바로 좋은 의사란 말이다.

자녀들에게 ‘겉이 멋있는 사람보다는 속이 알찬 사람이 돼라’고 가르친다는 그를 인터뷰하면서 최고의 의사보다는 환자를 열심히 보는 그래서 최고보다는 최선을 지향하는 의사라는 느낌을 받았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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