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멤피스 한인사’ 책자 발간 자랑거리
▶ 7년에 걸쳐 제작 500페이지 달해
※ 광복 70돌 특별 기획
【제4편 남부 테네시주의 한인사회】
④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 멤피스
멤피스(Memphis)는 내쉬빌과 쌍벽을 이루는 테네시주 2대 도시다. 미국이 자랑하는 20세기 문화 아이콘이자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며 미국 내 인종차별 근절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흉탄을 맞고 사망한 곳으로 유명하다. 규모는 작지만 멤피스에서도 한인사회는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현지 한인들은 한인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며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살아간다.
■ 한인인구 3,000명, ‘멤피스 한인사’ 발간 자부심
대도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내쉬빌과는 달리 멤피스의 첫 인상은 시골스러웠다. 다운타운 주변 프리웨이는 한가했고, 거리를 걸어다니는 주민도 거의 없었다.
다운타운에서 좀 떨어진 자그마한 스트립 몰 안에 있는 멤피스 한인회 사무실에서 멤피스 한인 5명을 만났다. 최병일(62) 제28대 멤피스 한인회장, 김만수(53) 한인회 사무총장, 나성애 한인회 부녀부장, 서윤환(88) 전 한인회장, 변종수(82) 초대 한인회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한인회에 따르면 현재 멤피스 지역 한인인구는 2,500~3,000명.
내쉬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어느 지역보다 한인들은 잘 뭉치고 한인회 역시 활성화돼 있다. 이곳 역시 뷰티 서플라이, 세탁소, 식당, 편의점, 의류, 신발 등 한인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는 내쉬빌과 성격이 비슷하다. 10~20년 전만해도 한인들이 흑인 밀집지역에서 그로서리 스토어를 많이 했는데 당시 100개를 웃돌던 숫자가 지금은 10개 내외로 줄었다고 한다. 많은 그로서리 오너들이 다소 위험한 환경과 긴 영업시간 등으로 뷰티 서플라이, 세탁소 등으로 업종을 바꾸고, 나이가 들어 은퇴하기도 해 업소 수가 급감했다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최 회장은 “멤피스 한인사회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15년 전인 2000년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멤피스 한인사’ 책자를 발간한 것”이라며 “책자에는 1962년부터 최근까지의 멤피스 한인들의 유입사는 물론이고 한인들의 생활상, 사고방식, 사업체 현황과 멤피스의 역사 및 환경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자료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멤피스 한인사는 미국에서는 세 번째로 발행된 한인 자료집으로 1993년 한인회의 주도로 2만여달러를 모금, 이곳의 원로인 장익환씨가 7년에 걸쳐 제작했다.
멤피스 한인사에 따르면 1962년 김연옥씨가 일반 이민 목적으로 최초로 멤피스에 정착한 한인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는 아직 가족초청 이민이 없었던 시기로 의료, 신학 계통의 유학생, 테네시주의 목화(면) 산업 연수차 한국인들이 오고가던 시절로 알려져있다. 멤피스에 본격적으로 한인들의 유입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말. 연평균 3만명의 한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쫓던 1970년대 멤피스에서 한인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해 1970년 초교파의 ‘멤피스 한인교회’가 설립됐고, 한해 전인 1969년 멤피스 대학의 변종수 교수와 김진씨가 주축이 돼 멤피스 한인회가 발족됐다.
■ 활성화된 한인회, 차세대 한인 지도자 발굴 숙제
멤피스 한인사회 원로인 변종수 초대 한인회장은 “내가 처음 멤피스에 정착했을 당시 이곳 한인가정은 10여가정에 불과했다”며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인사회가 대형화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서윤환 전 한인회장은 “테네시주에만 6개의 한인회가 있지만 아마도 멤피스가 가장 모범적이고, 활발한 한인회인 것 같다”며 “외지 한인들의 이주에 따른 정착 알선부터 연로해 가는 1세 이민자들의 노인정 역할까지 다양한 기능을 갖춘 한인회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멤피스 한인회는 놀라울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마다 3.1절 기념식, 6.25 참전용사 위로의 밤, 8.15 광복절행사, 교민 야유회 등이 열리며 오는 11월에는 차세대 리더십 컨퍼런스도 개최할 계획이다.
한인회 이사 및 임원은 총 36명으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한인회 및 한인사회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한인회장만 14명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는 고문으로 한인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멤피스 한인사회도 고민거리는 있다. 다른 중간급 도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교육받은 1.5세 및 2세들이 대학을 가면서 고향을 떠나며 공부를 마친후 결국 대도시에 정착하기 때문에 곧 젊은 지도자 고갈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최 회장은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 “미우나 고우나 흑인도 가족처럼”
“그로서리 마켓 하면서 강도에게 수없이 털렸어요. 미우나 고우나 흑인들을 가족처럼 대하며 장사하지요”
멤피스 시내 흑인밀집 동네에서 30년동안 ‘미첼 마켓’을 운영해온 김삼현(62·사진)씨는 한인사회에서 그로서리 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멤피스에는 한인운영 그로서리마켓이 130여개가 있었지만 많은 한인들이 덜 위험한 뷰티서플라이, 세탁소로 업종을 변경하거나 은퇴를 선언, 지금은 5~6개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김씨는 “그동안 10번이나 무장강도를 당했고, 어떤 해에는 3번이나 도둑이 가게 벽을 부수고 들어와 담배 등 비싼 물건을 싹쓸이해 가기도 했다”며 “그래도 이걸 천직이라 여기고 계속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10년 전 20년 넘도록 김씨의 가게에서 가족처럼 지내면서 일해 온 흑인 종업원이 당뇨병으로 사망한 뒤 종업원을 두지 않고 부인 김승인씨와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의 얼굴에는 삶의 피곤함이 진득하게 묻어났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간간히 미소를 짓는 여유도 보였다.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동네 청소년을 붙잡아 그 자리에서 두드려 팬 적도 있다는 김씨는 “2년 더 일하고 은퇴할 계획인데 그 때까지 몸이 성하면 좋겠다”고 말하며 가게로 막 들어온 흑인손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 “한식 전도사 자부심으로 서비스”
“한국 음식 전도사라는 자부심으로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선사하겠습니다”
멤피스 최초의 코리안 BBQ 식당 ‘아시아나 가든’의 이선옥(65·사진) 대표는 LA 한인타운 한복판인 8가와 카탈리나 코너에서 한식당 ‘쌈밥집’을 운영하다 20년 전 멤피스로 이주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동안 이 지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동네 토박이들로부터 ‘BBQ 아줌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대표는 “처음 멤피스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한인인구는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며 “일년 중 크리스마스와 땡스기빙을 제외한 363일을 식당에서 생활한다”고 말했다.
멤피스에 20년을 살면서 같은 주 내쉬빌은 커녕 멤피스 최고의 명소 ‘그레이스랜드’도 가보지 못했다는 이대표는 “평생 한 우물을 파면서 두 아들에게 비즈니스를 차려 줄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며 “앞으로 멤피스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손님 중 백인과 흑인이 90%를 차지한다는 이 대표는 “미국인들은 불고기, 갈비, 돌솥비빔밥, 김치볶음밥 4가지 메뉴를 좋아한다”며 “식당은 물론, 연회장과 노래방 시설도 완비되어 있어 LA 한인들이 방문하면 100%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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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