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성도 여성도 아닌‘XXYY 증후군’을 아시나요

2012-03-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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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염색체 이상’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

남성도 여성도 아닌‘XXYY 증후군’을 아시나요

레스비아 니포로스와 아들 데본(8)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본은 정상인에 비해 성염색체가 두 개가 더 많은 이른바‘XXYY 증후군’ 환자다.

레스비아 니포로스는 지난 8년간 아들이 희귀병 환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혹시라도 아들 데본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주변의 잔인한 호기심에 노출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데본 니포로스(8)는 정상인에 비해 성염색체가 두 개가 더 많은 이른바‘XXYY 증후군’ 환자다.

정상적인 인체 세포는 23쌍으로 구성된 총 46개의 염색체를 지닌다. 이 가운데 암수를 결정하는 성염색체형은 남성의 경우 X염색체와 Y염색체가 하나씩 결합해 XY 형태를, 여성의 경우 두 개의 X염색체가 만나 XX 형태를 이룬다. 그러나 데본의 성염색체형은 XXYY로 되어 있다. 정상적인 여성에 비해 Y염색체가 2개가 많다. 물론 남성으로 분류할 수도 없다. ‘확실한 남성’보다 X염색체와 Y염색체를 각각 하나 씩 더 갖고 있기 때문이다.

XXYY 증후군은 성염색체가 정상보다 한 개 이상 더 존재하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의 일종이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의 성염색체형은 X염색체가 하나 많은 47, XXY와 데본과 같은 48, XXYY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가운데 47, XXY가 80~90%로 가장 많은 반면 48, XXYY와 49, XXXXY는 가장 드문 형태에 속한다.

XXYY 증후군을 가진 어린이의 부모들이 운영하는 XXYY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따르면 남성 1만7,000명당 한 명이 여분의 X염색체와 Y염색체를 각각 하나씩 갖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이수중인 데본은 외형상으로는 거의 멀쩡한 남자아이다. 그러나 정신지체아인 데다 정상아보다 고환이 적고 자기 또래에 비해 키가 크며 여성형 가슴을 지니고 있다.

XXYY 증후군 환자는 남성 호르몬 분비량 부족으로 성인이 된 후 무정자증 불임증세를 보이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조기 비정상발육, 치과적 문제, 다리의 혈관이 좁아지는 말초혈관질환 등의 신체적 이상을 일으킨다.

레스비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데본이 희귀병 환자라는 사실을 여태껏 숨겨왔다”며 “그러나 사실을 감추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그를 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레스비아는 데본을 임신했을 때부터 그가 유전자 장애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의사로부터 태아 유전자 검사 결과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뱃속의 생명을 지운다는 것은 그녀에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레스비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가 전부였고, 그녀의 기도 제목은 ‘의사의 오진’이었다.


그토록 애타게 검사 결과가 틀렸기를 바랐지만, 현대 의학기술은 야속하게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 5월생인 데본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유아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조기 개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두 살도 되기 전에 특수학교에 다녔다.

이 같은 조기 개입으로 데본은 공공장소에서 적절히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교육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만만한 엄마나 한 살 아래 여동생인 브리안나만 있는 곳에서 그의 공격적인 성향은 여지없이 발톱을 세웠다.

XXYY 증후군은 내재된 범죄행동이나 비행 성향을 조장하는 잔인한 특징을 지닌다. 이상 발육으로 여덟 살의 나이에 벌써 4피트11인치의 몸집을 지닌 아들이 성깔을 부릴 때마다 레스비아는 쩔쩔맨다. 물리적으로 아들을 통제하기란 이미 불가능하다.
데본은 3~4세 아동의 지적 수준을 갖고 있다. 그는 여전히 땅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입에다 넣곤 한다.

레스비아는 1년 전 샤핑 몰에서 일어났던 소동을 잊지 못한다. 장을 본 후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데본이 갑자기 몸을 뒤틀며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그 바람에 데본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카운터에 부딪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데본이 레스비아에게 “나를 떠밀었다”며 목청껏 고함을 질러댄 것.

데본의 비명이 잦아들지 않자 주변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레스비아가 어린 아이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생각한 한 여성은 911에 전화를 했다. 꼼짝없이 아동학대범으로 몰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내 아들이 XXYY 증후군 환자”라거나 “정신지체아”라고 소리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레스비아는 그만 어린아이처럼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XXYY 증후군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외톨이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의사들조차 XXYY 증후군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전국 희귀병기구라는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 활동 중인 매리 던클은 레스비아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전했다.

던클은 “희귀병의 문제는 사람들이 그 병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라며 “내 생각으로 일반적인 해결책은 이 병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높이는데 있다”고 말했다.

매년 2월17일을 ‘XXYY 증후군 인식의 날’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2월17일은 한 해가 시작된 지 48일째 되는 날이다.
XXYY 프로젝트 이사인 래리 라코우스키는 그의 열 살난 아들 역시 48, XXYY인 탓에 레스비아의 막막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라코우스키 아들의 증상은 데본에 비해 훨씬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그는 덴버 소재 칠드런스 하스피틀의 니콜 타타그리라 박사로부터 정기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레스비아는 라코우스키처럼 아들을 전문의에게 데려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늘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그녀는 경제적인 여건만 허락된다면 언제이건 데본을 타타그리라 박사에게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XXYY 증후군은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이 병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지닌 의사가 별로 없다. 전문의를 찾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치료비 역시 만만치 않다.

타타그리라 박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XXYY 증후군 전문의다.
라코우스키는 “타타그리라 박사 외에 XXYY를 전공한 의사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내분비과 전문의나 소아과 전문의가 XXYY 증후군을 다루긴 해도 이 분야에 타타그리라 박사에 견줄 만큼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의사가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의 부족은 희귀병 환자와 보호자가 감수해야 하는 또 하나의 불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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