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면이 붕괴되가는 여인의 초상화이자 성격탐구 드라마’

2026-06-05 (금) 12:00:00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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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커런츠’(The Currents) ★★★★ (5개 만점)

▶ 고뇌하는 내면을 제3자의 눈으로 관찰
▶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공감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내면이 붕괴되어가는 여인의 초상화이자 심리 미스터리 분위기를 지닌 성격탐구 드라마로 아르헨티나 감독(각본 겸) 밀라그로스 무멘달러는 이 여인의 고뇌하는 내면을 엄격하게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로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과 총명하고 아름다운 어린 딸 그리고 상류층 아파트 등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이 여자가 죽음마저 시도하면서 겪어야하는 고뇌야말로 실존적인 문제로 다람쥐 쳇바퀴 돌리 듯 하는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물음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보노라면 서서히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촬영과 음향효과가 매우 감각적인데 특히 아스팔트를 뚫는 착암기 소리와 패션 의상과 여인들의 맨살 다리 등 소리와 시각적 묘사 등이 주인공 여인의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30대의 아르헨티나의 패션 디자이너 리나(이사벨 아이메 곤잘레스 솔라)가 겨울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수 패션디자이너 상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화장실에 들어간 리나는 유리 트로피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거리를 걷다가 강 위의 다리에서 아래로 뛰어내린다. 이 장면을 카메라가 롱샷으로 찍었는데 냉정한 관찰이다. 이 때부터 우리는 리나의 특별한 대답이 없는 실존적 의문에 동참하게 된다.


물에서 구출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집으로 돌아온 리나는 공수증에 걸려 물을 두려워하면서 샤워 대신에 휴지로 몸을 닦는다. 그리고 자기 일과 남편과 다섯 살 난 딸 소피아(엠마 파요 두아르테) 등 모든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며 전과 같지가 못하다. 남편 페드로(에스테반 비리아르디)는 아내의 그런 태도를 대하면서 “당신 어디로 갔어”, “당신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물로 머리를 감을 수도 없고 샤워도 할 수 없는 리나는 오랜 친구로 미용사인 아말리아(하스빈 카르바요)를 찾아가 마취를 하고 머리를 감고 스폰지로 몸을 닦는다. 리나는 물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가상현실 안경을 쓰고 비를 맞는 연습을 하고 의사를 찾아 상담을 하지만 별무효과다. 그러다 보니 부부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하고 딸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후반에 가서 리나가 아파트 꼭대기에 설치한 등대로 올라가 돌아가는 황금빛의 조명을 얼굴에 받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리나의 고뇌를 세척해주는 구원의 빛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부분이 강렬한데 과연 리나는 자신의 실존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았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정답을 내리기가 쉽지가 않다.

촬영뿐 아니라 음악도 좋은 데 볼만한 것은 리나 역의 솔라의 도전적이면서도 무너져 내려가는 무기력감을 연민스럽게 보여주는 연기다. 로열극장(11523 산타모니카).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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