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영웅본색’ 홍콩의 귀환
2026-04-10 (금) 12:00:00
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
1986년 개봉된 영화 ‘영웅본색’은 시한부 운명에 직면한 홍콩인들의 절망감이 담긴 작품이다. 1997년 중국 반환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는 영화 속 광기와 폭력, 주인공들의 저항과 의리 등에 투사돼 그려진다. 홍콩인들은 2014년 우산 혁명, 2019년 홍콩 역사상 최장, 최대 규모의 시위 등을 벌였으나 중국 정부의 민주주의 억압을 막지 못했다. “자유 홍콩은 죽었다”는 한탄 속에 자본과 인력이 싱가포르·도쿄 등으로 이탈했고 홍콩은 글로벌 금융 허브 지위를 위협받았다.
■최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중동 자금들과 중동에 투자한 아시아 자금들이 홍콩으로 발을 돌리고 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중동계 큰손들의 홍콩 주식·채권 투자, 초고액 자산가를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문의가 평상시보다 5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전쟁 발발 이후 홍콩증권거래소의 거래액도 크게 늘었다. 중동의 금융 허브인 두바이가 공격받자 안정성과 성장성을 갖춘 홍콩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 전쟁과 무관하게 글로벌 자금의 홍콩행은 구조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홍콩 등록 펀드로의 순유입액은 전년 대비 118.5%나 급증했다. 홍콩이 중국 본토와 세계를 연결하는 ‘슈퍼 커넥터(Super Connector)’ 전략을 기반으로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위상을 굳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홍콩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스쿠크(이슬람 채권)를 추종하는 아시아 최초의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는 등 중동계 자금을 끌어들여 서구 자본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홍콩 당국은 반중 시위, 미중 갈등 등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침체되자 2023년부터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 본토와 자본시장 연계, 디지털 금융 허브 전략 등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에서 홍콩의 순위는 2020년 6위에서 2024년부터 3위로 올라섰다. 과거 글로벌 자본의 탈(脫)홍콩이 이어질 때 서울을 대체지로 육성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지금이라도 서울의 금융 허브 매력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