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일반인의 관심을 덜 받는 하위 규정의 기준 한 줄, 첨부된 별표의 문구 하나가 기업 경영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큰 흐름 속에서 규제가 정해지더라도 기업은 세부 사항에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규제는 일단 시행되고 나면 경로 의존성과 이해관계의 고착으로 인해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사전 대응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속도를 제한하는 규제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야간이나 주말에도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위험과 자기 책임에 대한 인식, 교통사고 시간대와 유형, 시민 불편 정도에 따라 여러 주장이 제기된다. 토론과 타협이 필요한 영역이다.
민주 사회의 의사결정에는 내용적 타당성을 확보하려는 절차적 정당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이 합리적으로 검토되는 과정을 거쳐야 결정의 정당성과 순응도가 높아진다. 규제합리화위원회의 규제 심사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심사 과정에서 설득력을 인정받은 의견이 규제가 된다.
행정규제기본법은 규제 도입 시 복수의 규제 대안과 비규제 대안을 비교·검토하고, 비용과 편익, 파급효과, 집행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검토 결과를 담은 문서가 규제영향분석서다.
각 부처는 규제가 포함된 법령을 입법예고할 때 이 분석서를 함께 공개하고, 규제 심사 담당 부서는 이를 토대로 심사한다.
2024년 한 해 동안 규제합리화위는 842건의 규제를 심사했고 이 중 10.2%인 86건을 철회 또는 개선했다. 주로 규제 범위나 기준을 조정해 과도한 부담을 완화하는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나름 성과가 있지만 보완할 점도 있다.
규제를 설계하는 부처가 분석의 주체이다 보니 규제 필요성 강조를 위해 편익은 크게, 비용은 적게 계산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피규제자 입장에서는 비용과 우려가 정확하게 투입돼 세부 기준이 정해지는 것이 절박하다.
이를 담보할 조치가 필요하지만 현행 제도의 구조적 한계는 계속될 것이고, 규제 심사 기구 역시 인력과 시간의 제약을 안고 있다.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 한다. 피규제자에게 세 가지 실천 행동을 제안한다.
첫째, 규제 예보에 안테나를 세우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자. 협회와 단체를 통해 규제 당국의 동향을 늘 모니터링해 규제영향분석서가 작성되는 초기 단계부터 기업의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부처 내부의 의사결정이 끝난 뒤에는 수정이 훨씬 어려워진다.
둘째, 규제 심사 당국을 숫자로 설득하자. 규제 도입 시의 현실적인 제약을 실감 나게 설명하고, 규제로 추가되는 인건비, 설비 투자비, 행정 부담 등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편익에 대해서도 정확한 근거를 요구해야 한다. 심사자는 추상적인 우려보다 계량화된 비용과 효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셋째, 반대자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파트너가 되자. 규제 취지에는 공감하되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3의 방안이나 단계적 도입 방식을 먼저 제안해야 한다. 유연한 대안 제시는 규제 심사 과정에서 수용 가능성을 높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새로 만들어지는 규제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세부 사항에서 결정된다. 악마도, 해답도 그곳에 있다. 최대의 사전 대응이 가장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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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문 한경대 석좌교수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