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여 년 전,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모든 것이 낯설어 불안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작은 설렘도 있었다. 우리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고모네 집으로 향했다. 이 땅에서 처음 푼 짐이었다. 하지만 투 베드룸 아파트에 두 가족이 살기에는 공간이 비좁았다. 우리는 서둘러 방을 구해 나왔다. 아파트도 찾아야 했고, 일자리도 찾아야 했다. 둘 다 급했다.
아빠는 안정된 직업을 찾기 전까지 빌리 삼촌의 스와밑에서 일하기로 했다. 고모의 시동생인 빌리 삼촌은 신발 가게에 당장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갓 이민 온 친척을 외면할 수 없다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스팔트 위에 세워진 천막은 여름 열기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아침에 빳빳하게 진열해 두었던 가죽 구두는 오후가 되면 눅눅해져 힘을 잃었다. 햇볕은 하루 종일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퇴근해 돌아온 아빠의 얼굴은 늘 햇볕에 그을려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더위를 먹어 일을 나가지 못한 날도 있었다.
빌리 삼촌의 구두 노점 일은 임시방편이었고, 아빠에게는 오래 버틸 수 있는 직장이 필요했다. 마침 빌리 삼촌의 친구라는 사람이 아빠에게 H 호텔 하우스키핑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나섰다. 그 호텔은 월급이 높고 종업원 복지도 좋아, 한인들 사이에서 들어가기 힘든 직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삼십 대였던 그는 한인회 피크닉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인상이 부드러웠고 빨간 코벳을 몰고 다녔다. 큰 키에 콧수염까지 길러 당시 인기 있던 톰 셀렉을 닮았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영어도 유창한 그는 차가 없는 사람을 일터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 미국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H 호텔 인사과 책임자인 친구에게 줄 뒷돈이 필요하다며 삼천 달러를 요구했다. 그 무렵 부모님은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인터뷰에서 떨어지고 있었던 터라 우리는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라 믿었다. 아빠는 고모에게 돈을 꾸어 어렵게 삼천 달러를 건넸다. 그 돈은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 여섯 달 치 월세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보스를 만나기로 한 약속은 번번이 미뤄졌다. 몇 달이 지나자,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캐나다로 떠났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우리를 포함해 대여섯 집이 그에게 속아 돈을 뜯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어느 날, 빌리 삼촌이 미안한 얼굴로 찾아와 아빠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그날 밤, 아빠는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담배 연기가 리빙 룸에 천천히 번져 나갔다. 그때 처음으로, 아빠의 등이 전보다 굽어 보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끔 그 뒷모습이 떠오른다. 소파에 말없이 앉아 있던 아버지의 등. 입고 있던 색이 바랜 파란 티셔츠. 그 위로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 그 등이 우리 가족의 삶을 묵묵히 앞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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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