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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올 아메리칸’ 82공수의 운명

2026-03-26 (목) 12:00:00 이영창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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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공수사단은 101공수사단과 함께 공정작전(공중으로 적 후방 투입)을 담당하는 미국 육군의 대표 부대다. 전쟁 드라마의 명작 ‘밴드 오브 브라더스’(BoB) 팬들에겐 서운한 얘기일 수 있지만, 사실 82공수(1917년 창설)가 101공수(1918년)보다 역사도 오래됐고 더 정예부대로 간주되기도 한다. 사단 별칭이 ‘올 아메리칸’(창설 때 48개 주에서 모임)이라는 점만 봐도 이 부대가 미 육군 전체를 대표하는 ‘메이커 사단’임을 알 수 있다.

■ 이 사단은 1차대전 당시 독일의 강력한 방어선을 돌파한 생미엘 전투, 독일 항복을 이끈 최후 진격 뫼즈-아르곤 공세에 참가했다. 2차대전 때 공수부대로 성격을 바꿔 이탈리아 침공에 투입됐고, 노르망디에선 상륙부대보다 먼저 적 후방에 들어가 주요 시설물을 장악했다. BoB 2편에서 낙하 직후 총을 잃어버린 딕 윈터스가 조우한 아군 병사들이 82공수 소속이다. 역사상 최대 공수작전인 마켓가든에도 참가했는데, 영화 ‘머나먼 다리’에서 로버트 레드퍼드가 82공수 대대장이었다.

■ 2차대전 이후 베트남, 걸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미군이 관여한 거의 모든 전장에 82공수사단은 ‘개근’했다. 유일하게 빠진 대규모 분쟁이 한국전쟁인데, 그건 이 부대가 당시 소련의 유럽·아시아 침공에 대비한 ‘전략 예비대’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6·25 참전 미 장군 중 최고 영웅으로 꼽힐 만한 매슈 리지웨이가 노르망디 때 82공수사단장이었다.

■ 항상 미군 첨병인 이 부대가 최근 갑자기 훈련을 중단했다. 이란 투입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 해병대가 이미 호르무즈로 이동 중인데, 그렇다면 이란 요충지를 노린 해병대(상륙)와 공수부대(공정)의 입체 작전이 임박했다는 얘기다. 지금까진 위협용으로 보이지만, 트럼프 성정을 감안하면 실전 투입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무리 최정예라도 수천 명으로 61만 병력 군사강국을 상대하려면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올 아메리칸은 창설 이래 가장 불확실한 작전에 내몰려, 가장 변덕 심한 통수권자에게 부대 명운을 맡기고 있다. 마치 세계 경제의 운명처럼.

<이영창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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