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쑥불쑥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콧소리가 따라 나온다. “내 마음속에 저장~”.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으로 인생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 배우 박지훈의 유행어다.
사진 찍는 손동작과 함께 한쪽 눈을 찡긋하며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나오면 내 눈꼬리는 초승달이 되고 입은 헤벌쭉해진다. 주문이라도 걸었단 말인가. 중독성이 있다. 한 번 두 번 따라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진다. 무해한 사랑의 주문이랄까. 1,400만 관객은 울고 웃으며 영화의 순간순간을 마음속에 저장했을 것이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으로 트로피를 받아 들던 순간은, 영원히 잡아두고 싶은 순간의 저장각이다.
수상자를 호명하자마자, 나는 물개박수를 치고 소리를 내질렀다. 화면 속 사람들도 그러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자랑스러운 수상자들이 무대로 걸어 나오는 동안 숨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심장은 조용히 박자를 올렸다. “이 상을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에게 바친다”라는 매기 강 감독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울컥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그 기쁨의 찰나를 붙잡고 싶어서 “내 마음속에 저장~!” 한다.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았다고 생각하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많아진다. 디카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더 그런 것도 같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영감을 순간 포착하고, 그 느낌을 5행 이내의 짧은 문자로 즉시 표현하는 극 순간의 멀티 언어 예술이다. 한창 재미를 느끼다 보니 주변의 생명체, 무생물까지 관심이 간다. 허투루 흘려보내기가 아쉽다.
사물의 표정이 나를 먼저 붙잡고, 몸이 반응하는 순간, 같은 장소라도, 같은 장면이라도 그때의 공기와 감각은 전혀 같지 않다. 단 한 번뿐인 떨림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문장을 다듬는다. AI는 이런 순간의 느낌에 아직 닿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패턴으로 문장을 만들어내지만, 그 문장에 실린 감정의 떨림까지 살아내지는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생길지 예측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맥박을 타고 흐르는 생생함까지는 닿지 못한다. 사람은 숨결과 온기, 심장의 박동으로만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것이 인간의 특권이며, 체험이 가진 힘이다.
흔적은 복제될 수 있지만, 체험 자체는 복제되지 않는다. AI는 내가 언제 “내 마음에 저장”이라고 말할지를 맞힐 수는 있어도, 그 말을 내뱉게 만드는 찰나의 울림 자체를 경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AI가 발전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데이터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며 남겨지는 흔적이라는 것. 그 지나감을 붙잡기 위해 사진을 찍고, 문장을 남기고, 기억을 되짚는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단순한 말로 순간을 극대화한다.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다정한 저항이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겠다는 사랑의 결의 같은 말. 데이터로 쌓이는 기억 대신, 내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하는 단 한 번뿐인 순간을 붙잡고 싶을 때면 나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주문을 걸 것이다. 내 마음속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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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 미주문협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