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일회담 앞둔 日, ‘호르무즈 함정’ 고심…파견 결단 가능성도

2026-03-16 (월) 09:30:58
크게 작게

▶ 다카이치, 트럼프 압박에 일단 신중모드… “美요구 없지만 日선박 보호 등 검토”

▶ 2019년엔 ‘우회 전략’으로 중동에 함정 보내…파견 시 법적 근거 찾기 과제일 듯
▶ ‘전쟁가능 국가’ 행보와 연관성도 주목…언론 “어려운 선택 강요받고 있어”

미일회담 앞둔 日, ‘호르무즈 함정’ 고심…파견 결단 가능성도

다카이치 일본 총리[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 선박 항해를 위해 한·중·일 등 7개국을 상대로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하면서 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일본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는 1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릴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호르무즈 해협 선박 보호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강한 일본'을 내세운 다카이치 총리는 안보 정책의 기축인 미일 동맹 강화와 미국의 관세 조치 등을 고려해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 개선에 매진 중이지만, 전통적으로 이란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고 자위대 활동 확대에 법리상 상당한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함정 파견에 신중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첨예하게 대립 중인 중국을 견제하고 '전쟁 가능 국가'를 염두에 둔 보수적 안보 정책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전격적으로 자위대 파견에 나설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트럼프, "함정 보내라" 압박 수위 높여…난처한 다카이치 "종합적 검토"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한·중·일 등 특정 국가를 지목해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1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 호위 참여에 대한 응답을 이달 말 혹은 내달 초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 이전에 내놓지 않으면 회담 일정이 미뤄질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향해서도 관세, 방위비(방위 예산) 인상 등을 요구해 왔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이전에 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요구에 어느 정도 호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분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호르무즈 해협 함정 파견 관련 질문에 "(미국 측에서) 아직 요구하지 않아 대답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과 관계있는 선박, 승무원의 생명을 어떻게 보호할지, 무엇이 가능할지 등을 법적 관점도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호위함을 포함한 자위대 파견과 관련해 "현시점에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위대법에 근거한 '해상 경비 행동'에 대해서는 "제도상으로는 가능하다"면서도 현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자위대법은 "해상에서 인명, 재산의 보호 또는 치안 유지를 위해 특별히 필요한 경우 방위상이 총리 승인을 얻어 자위대 부대에 해상에서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규정을 적용할 경우 일본인과 일본 관련 선박을 보호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일본과 무관한 외국 선박을 보호할 수는 없다고 요미우리신문이 해설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날 '일본과 관계있는 선박, 승무원 생명'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법리 해석을 염두에 둔 결과로 보인다.

◇ 美공격에 위법성 없어야 日집단자위권 행사 가능…'우회 전략' 검토할 수도

일본 정부가 안전보장 관련법에 근거한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자위대가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해 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일 갈등의 원인이 된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했을 때 언급한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을 뜻한다.

다만 일본은 무력행사에 국제법상 위법 요소가 있는 나라를 지원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따라서 존립위기 사태를 적용하려면 일본은 미국의 이란 공격에 불법성이 없다고 본다는 점을 국제 사회에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그러나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어서 '법치'를 중시해 온 일본 정부가 무작정 미국 편을 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내 여론도 미국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편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4∼15일 1천1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해 82%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지한다'는 단 9%였다.

이 신문은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공격한 직후 조사에서는 미국 행동을 '지지한다'는 견해가 31%였다"며 이번 공격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 더 부정적인 편이라고 해설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도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해 "확정적으로 법적 평가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집단 자위권을 적용하면 우호국이었던 이란을 완전히 적으로 간주한다는 태세 전환을 해야 한다. 이는 일본의 외교 전략을 크게 수정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집권 자민당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무조사회장이 전날 NHK에서 일본 함정의 호르무즈 해협 파견과 관련해 "굉장히 벽이 높다"고 언급한 것도 일본 정부의 난처함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바야시 정조회장은 "(함정 파견의) 법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이번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이야기"라며 정부가 지금은 존립위기 사태나 '중요 영향 사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중요 영향 사태는 방치할 경우 무력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일본이 다른 나라 군대를 후방에서 지원하거나 협력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미국이 2019년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업용 선박을 호위하는 일종의 군사 동맹체인 '호위 연합'을 결성했을 당시 일본이 이에 참여하지 않고 '우회 전략'을 통해 서방을 지원한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아베 신조 내각은 이란과 관계도 고려해 호위 연합에 참여하지 않고 '조사·연구' 임무 수행을 명목으로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어지는 오만만, 아라비아해 북부 공해 등 해역에 해상자위대 호위함을 파견해 정보 수집 활동을 벌였다.

◇ 자국 선박 피해시 '결단' 내릴 수도…日각료들, 美장관과 접촉 늘려

여러 요소를 종합하면 일본이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을 파견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란의 기뢰 부설로 자국 관계 선박이 피해를 본다면 법적 근거를 마련해 자위대를 중동에 보내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중동 해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호위함 '아케보노'나 '무라사메' 등이 파견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4일 방위대 졸업식에서 "우리나라(일본)와 국민을 단호히 지키기 위해 방위성·자위대 조직의 존재 방식을 포함해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각료들은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장관과 잇따라 소통에 나서고 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전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약 30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도 이날 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통화를 조율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후지TV에 출연해 미국이 함선 파견을 요구한 7개국에 중국이 포함된 것이 지금까지 전개와 전혀 다르다면서 "(일본이) 이 점을 잘 의논해 되도록 대답을 질질 끌지 않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닛케이는 "이란 정세 혼란으로 일본이 외교력을 발휘할 여지가 좁다"며 "일본이 어려운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