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간정보’가 뭐길래… 구글 참전, ‘위기일까 기회일까’

2026-03-13 (금) 12:00:00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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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기업들만 접근했던 정밀지도
▶ 구글 요청 20년 만에 조건부 허용
▶ 국내 공간정보 산업 규모 급성장
▶ 2024년 기준 총매출 11.2조 달해

▶ 관련 업체 대다수 중소·영세 기업
▶ 빅테크와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
▶ “첨단 기술 발전 도움 될 것” 관점도
▶ 데이터 보호 등 통제장치 구축해야

구글이 정밀지도를 요청한 지 20년 만에 조건부 반출이 허용되면서 공간정보 업계에 적잖은 변화가 예고됐다. 이전까지 국내 기업만 접근할 수 있었던 1대 5000 지형도가 가공된 형태로 빅테크에 개방되면 국내 생태계가 위축될 거란 우려가 크다. 하지만 한편에선 ‘메기 효과’로 신산업 혁신에 오히려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 만큼 향후 어떤 파급 효과가 나타날지 이목이 쏠린다.

공간정보는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 대상의 속성과 관계를 함께 나타낸 데이터다. 흔히 관련 산업으로 지도 서비스를 떠올리지만, 생태계는 훨씬 다층적이다. 항공·위성 영상을 활용해 도로·건물·지형을 좌표 데이터로 수집하는 회사가 있고,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정제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도 형태로 만드는 가공 업체가 있다.

이후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업체는 이 데이터를 위치 기반 서비스로 확장해 검색, 길찾기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엔 지도 연결프로그램(API)을 활용한 서비스 산업이 급증했다. 물류·배달, 부동산, 모빌리티 회사는 지도 API를 기존 서비스에 접목한다. 최단 경로를 계산하고 실시간 위치를 추적하거나 교통량·유동 인구를 분석해 입지를 평가하는 식이다. 아울러 현실 세계를 디지털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신산업에서도 공간정보가 주목받는다. 지형을 바탕으로 도시 전체를 가상 공간에 복제한 디지털 트윈부터 차선 데이터를 활용하는 자율주행차까지 모두 공간정보가 기반이기 때문이다.

산업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간정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공간정보 산업 총매출은 11조2,836억 원, 사업체 수는 5,854개에 달한다. 통계가 처음 집계됐던 2013년 총매출(6조4,573억 원)에 비해 약 75%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 산업을 구성하는 업체 대다수는 중소·영세기업이다.

이 생태계에 제도적 안전장치 없이 글로벌 기업이 들어온다면 국내 기업이 잠식당할 우려가 큰 것이다. 최진무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구글이 갖춘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감안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구글이라는 ‘메기’ 출현으로 공간정보 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정밀지도 데이터를 자사 인공지능(AI)·클라우드 인프라에 통합해 API를 제공하면, 국내 기업들은 지도 구축·가공·운영 전 과정을 자체 수행하기보다 편의성을 위해 구글이 만든 기능을 호출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표준에 한번 종속되면 전환 비용도 만만찮아 구글 라이선스 정책에 좌우되기 쉽다”고 덧붙였다.

정밀지도 반출이 국내 공간정보 산업에 초래할 경제적 손실을 예측한 연구도 있다. 정진도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가 연산가능일반균형모델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향후 10년간 피해 누적액이 최대 19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반출 직후엔 유의미한 변화가 없더라도 2029년 전후로 해외 누수 비용이 급증해 2032년 이후엔 구조 비용이 가속화한다”는 게 정 교수 예상이다.

빅테크와 나란히 기술 수준 검증

하지만 미래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기회가 될 거라는 관점도 있다. 디지털 트윈이나 자율주행 같은 첨단 기술을 국내 기업이 빅테크와 동일한 환경에서 운영하며 기술 수준을 검증하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조천식모빌리티대학원장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면서도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고립되지 않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글의 영향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반출 조건을 구체화하고 파생 데이터 보호를 포함한 실효성 있는 통제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대한공간정보학회장을 맡은 안종욱 안양대 스마트시티공학과 교수는 “반출 조건을 어겼을 때 무엇을 어떻게 제재할 수 있는지를 명문화하고, AI를 활용한 2·3차 저작물에도 규제가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는 “빅테크의 조건 이행뿐 아니라 데이터 활용 전반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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