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 에세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시 윌리엄스

2026-03-04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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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실었다. 뉴올리언스 프렌치 쿼터, 골목마다 음악과 향신료 냄새가 뒤섞인 거리에서 전차를 기다렸다. 차비는 1달러 25센트, 잔돈은 거슬러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동전을 맞바꾸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었고, 나 역시 낯선 이의 호의로 전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순간 블랑시의 마지막 대사가 겹쳐졌다.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아직 출발도 하기 전, 이미 나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붉은 차체의 전차는 오래된 무대 장치처럼 덜컹거리며 다가왔다. 나무 의자에 앉아 차창 밖을 보니, 바(bar)에서 흘러나오는 색소폰 소리와 기름진 공기가 스쳐 갔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로 가는 전차로 갈아타 여섯 블록을 지나 극락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블랑시의 말처럼 전차는 미시시피 강과 철도 사이를 따라 엘리지안 필드로 향했다.

이름은 극락이지만 풍경은 퇴락해 있었다. 흰색 집들은 세월에 씻겨 잿빛이 되었고, 화려한 남부 저택 대신 음습한 빈민가가 펼쳐졌다. 귀족적 품위를 지키려 했던 블랑시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미래는 이미 예고돼 있었을 것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 환상에 기대 선 한 여인의 비극이 거리 위에서 되살아났다.

한때 빈민가였던 이곳은 이제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현대식 건물과 낡은 2층 집이 나란히 서 있고, 과거와 현재가 겹쳐 있다. 욕망이라는 전차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명성을 실어 나르며 이곳을 ‘극락’으로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천장에 늘어진 줄은 인생의 신호처럼 보였다. 당기면 내릴 수 있지만, 어디서 내려야 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묘지는 음산하고, 극락은 불안하다. 욕망을 좇다 보면 죽음의 역에 이르고, 이상향을 꿈꾸지만 손에 닿지 않는다. 블랑시가 도착한 곳은 극락이 아니라 파멸의 문턱이었다.

“난 마법을 원해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아요.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만 말해요.”


몰락한 남부, 동성애 남편의 죽음,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블랑시는 환상 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스탠리는 그 환상마저 파괴했고, 스텔라는 눈을 감은 채 그 폭력을 받아들였다. 세 사람 모두 욕망과 자기기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말했다. “내가 바로 블랑시 두보아다.” 알코올과 폭력의 아버지, 귀족적 어머니, 정신병원에 수용된 누이 로즈,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고독. 이 작품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전차는 종착역에 닿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과연 어디로 우리를 데려가는가. 인간이 갈망하는 엘리지안 필드는 어디에 있는가. 욕망을 내려놓아야만 닿을 수 있는 세계, 그러나 대부분은 끝내 묘지에서 내린다.

나는 내리려다 다시 손잡이를 붙들었다. 몇 번이고 이 길을 왕복하며 블랑시와 스탠리, 스텔라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욕망과 환상, 현실이 충돌하던 이 전차가 아직도 뉴올리언스를 달리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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