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함성이 눈 앞을 스친다. 삼일절. 탑골공원에서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선열의 넋을 기리는 때다.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마음의 실타래를 살피며 LA의 파아란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다.
전봇대는 골목의 게시판이다. 기둥마다 손짓하는 전단들- 노란 새 한 마리를 찾는 안타까운 한숨, 주말 교실로 아이들을 부르는 활기찬 웃음. 실종된 가족을 찾는 말 없는 읍소는 오늘 뉴스다.
‘미싱(Missing)’ 전단 속 여인이 네거리에서 웃고 있다. 40대로 보이는 얼굴, 갈색 눈동자와 곱슬한 머릿결 사이로, 애타는 가족의 통증이 스민 듯하다. 정갈한 골목, 붉은 부겐빌레아와 분홍빛 트럼펫 꽃이 화사한 길, 며칠 전 영화도 촬영한 곳에 오늘은 어쩐지 상실의 그림자가 짙게 일렁인다. 어쩌면 잃은 줄도 모르는데, 상실해가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다.
겨울비가 싸늘한 아침이다. 갈등 끝에 우산을 들고 나섰다. 비옷을 걸치고 대찬 빗줄기를 뚫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전신주 그 여인의 전단 옆에 ‘사례금’이라는 문구와 함께 검은 고양이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 빗물은 눈물처럼 전단 속 얼굴들 위로 흘러내린다. 햇살은 언제쯤 저 슬픔을 닦아내 줄 것인지 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다음날, 지나며 보니 전신주 풍경이 달라졌다. 발길을 멈추고 다시 살피자, 여인의 얼굴 위에 고양이 전단지가 겹쳐 있다. 초록색 덕트 테이프로 휘감아 붙인 전단에서 그 주인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보인다. 하지만 왜 하필 여인의 얼굴 위여야만 했을까. 이 긴 기둥에 꼭 그곳이어야 했나. 잃어버린 비통함과 찾고 싶은 절실함은 누구에게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다만 제 손톱 밑이 곪는 것은 알아도 남의 문드러진 가슴은 모르는양, 고양이 주인은 자신의 절실함을 따랐다. 여인의 가족을 생각하니 내마음도 서늘해진다.
한번 보게 되니 자꾸 시선이 간다. 그런데, 오늘은 달라졌다. 두 눈 크게 뜨고 새로 살핀다. 밤새 흔들린 갈등의 흔적일까. 겹쳐졌던 초록색 테이프가 사라지고, 두 전단지가 맑은 셀로판 테이프로 각각 아래 위로 붙어 있다. 고양이 주인은 간밤에 얼마나 고민했을까. 어둠 속에서 수백 번도 더 마음을 뒤집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잠들지 못했으리라. 지금 이 순간 그는 남의 자리를 덥쳤던 이기심을 이겨내고 배려를 선택했다. 갈등의 고뇌 후에 피어난 고귀한 마음결이다.
삶은 흔히 고해라 한다. 눈부신 AI 시대라 해도 세상은 결코 내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어우러져 사는 현실의 온기 아닐까. 가치관은 머물러 있지 않다. 그러나, 선조들의 올곧은 정신은 내가 대를 이어 지켜야할 귀한 자산이다. 백여 년 전 당시의 과제가 ‘ 해방’이었다면, 지금은 ‘작은 나’로부터의 해방이 아닐까. 전봇대의 전단들은 누군가의 호소이자, 내가 잃어버린 따스함일 수 있다. 꺽다리 기둥에 자리 잡은 두 전단이 아침 햇살 속에 빛난다. 오늘 이 골목길은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더 맑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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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