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라노=연합뉴스) 쇼트트랙 최민정이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수확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영광의 순간 뒤 기쁨을 만끽할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았다. 최민정(28·성남시청)은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혔다.
최민정은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빌라 네키 캄필리오에 위치한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대표팀 은퇴에 대해 못을 박았다.
뉴스1와 뉴시스에 따르면 최민정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올림픽인 건 확실하다"고 선언했다. 올림픽에 다시는 나서지 않을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최민정은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3000m 계주 금메달에 이어 1500m 은메달까지 수확했다. 2018년 평창 대회를 시작으로 3번째 올림픽에 나선 최민정은 개인 통산 7번째 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한국 선수 최다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종전 올림픽 최다 메달은 진종오(사격), 김수녕(양궁), 이승훈(스피드스케이팅)의 6개였는데 최민정은 이번 대회에서 메달 2개를 추가해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다만 더 이상 올림픽 메달은 늘어날 수 없게 됐다. 최민정이 향후 올림픽엔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최민정은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이다. 단기 임팩트로는 매우 강력했던 선수들이 많았으나 3번의 올림픽에서 이토록 꾸준히 최상위권에 머물렀다는 측면에서 최민정은 독보적이다.
압도적인 기량 때문일까. 4개의 올림픽 금메달과 4차례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등의 영광 뒤엔 아픔도 많았다. 경쟁국과 선수들에 집중 견제를 받아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고 과거 대표팀 내에서 심석희와 갈등도 겪었다. 피해자의 입장이었고 모든 게 밝혀졌지만 심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2023~2024시즌엔 부상으로 대표팀을 떠나 있기도 했다. 올림픽 시즌을 맞아 과거의 수준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도 있었다.
누구보다 최민정의 마음고생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편지가 큰 힘이 됐다. 21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인스타그램 채널엔 최민정 어머니가 그에게 전한 손편지가 공개됐다. 밀라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보라며 그의 어머니가 전해준 것이었다.
최민정 어머니는 "네가 벌써 세 번째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게 엄마는 믿기지 않는다. 6살 때 스케이트를 처음 신던 작은 아이가 이렇게 큰 무대에 선다는 게 기적 같다"며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출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마도 마음이 울컥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참고, 버티고, 울어왔는지 엄마도 알고 있다"고 했다.
또 "남들 눈에는 대단해 보이는 국가대표 선수겠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힘들어도 늘 참고 웃어 보이던 딸'"이라며 "너는 이미 엄마 인생의 금메달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다치지 말고 웃으면서 돌아오라"고 덧붙였다.
힘들었던 순간에도 묵묵히 열심히 버티고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며 이 자리까지 왔지만 자신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어머니의 편지에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최민정은 "(편지를 읽고) 많이 울었다. 지금까지 온 것만으로도 고생했고, 엄마 인생의 금메달이라는 대목을 보면서 힘든 과정을 견딜 수 있었다. 엄마의 편지 덕에 마음을 잘 추스르고 다잡았고, 그 덕에 올림픽을 잘 마무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편지로 힘을 냈고 그렇게 올림픽 무대와 작별을 고했다. 최민정은 21일 모든 경기를 마친 뒤 "후회 없이 경기해서 후련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며 "오늘은 경기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올림픽에서는 나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깜짝 발언으로 은퇴를 시사했다.
2년 전 파리 하계 올림픽이 오버랩된다. 당시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안세영(24·삼성생명)은 금메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에서 그동안 대표팀과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불합리하거나 비효율적인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그야말로 '핵폭탄'급 파장이 일었다. 이후 모든 시선은 안세영의 입에 집중됐고 결국 국정감사 등을 거쳐 배드민턴협회의 대변화로 이어졌다. 안세영도 이로 인해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배드민턴계에 긍정적 변화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최민정의 발언은 자신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안세영의 그것과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기뻐해야 할 시점에 충격을 던져줬다는 점에선 닮은 점이 있었다. 그의 쾌거에 찬사를 보내던 팬들은 하나 같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최민정은 "마지막 올림픽인 건 확실하다"면서 "다만 대표팀 생활이나 선수 생활을 더 할지는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젠 든든했던 최민정 없이 올림픽을 치러야 한다. 동료들은 아쉬움보다도 격려로 여제의 마지막을 축복했다. 이번 대회 2관왕에 오르며 최민정으로부터 왕좌를 이어받은 김길리(22·성남시청)는 "(최)민정이 언니가 올 시즌 우리 팀 주장으로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며 "옆에서 이야기하려니 어색하지만, 정말 수고 많고 고생 많았다. 언니와 함께 올림픽을 뛸 수 있어 영광이었다.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맏언니 이소연은 "옆에서 지켜볼 때 정말 열심히 하고, 성실하고 대단한 선수다. 어제 눈물을 보일 때 나도 울컥했다. 주장으로 정말 고생 많았고, 좋은 결과가 나와 다행"이라면서도 "사실 (올림픽 출전을) 더 해도 될 것 같긴 하다. 너무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민정이의 선택을 응원하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최민정과 한때 불편한 관계를 자초했던 심석희(29·서울시청)는 "개인전을 준비하는 것도 바쁠 텐데, 계주를 개인전보다 더 많이 생각해 줘서 고마웠다"면서 "주장으로서 가질 책임감이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힘든 부분이 많았음에도 노력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스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