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일본 헌법 제9조
2026-02-18 (수) 12:00:00
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
1946년 2월 4일 오전 10시, 도쿄 유라쿠초 다이이치생명 건물에 설치된 연합군최고사령부(GHQ) 본부의 대회의실에 25명의 GHQ 소속 미국인들이 모였다. 영문도 모른 채 소집된 이들에게 코트니 휘트니 GHQ 민정국장은 ‘1주일 안에 일본 헌법 초안을 만들라’는 극비 지시를 내렸다. 25명이 밀실에서 9일 만에 작성한 초안은 2월 13일 요시다 시게루 외무상 등에 전달됐다. 일본 정부와의 조율을 거쳐 마련된 최종안은 3월 7일 ‘일본 정부안’으로 공표됐다.
■일본이 1945년 8월 14일 연합군에 항복한 순간부터 1889년 제정된 일본제국 헌법, 이른바 ‘메이지 헌법’은 폐기될 운명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개헌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과업을 맡은 마쓰모토 조지 국무대신이 작성한 초안은 메이지 헌법과 별 차이가 없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마이니치신문의 특종 보도를 통해 일본 측 개헌안을 접한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25명을 소집한 것은 보도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 국민 주권을 선포하고 일왕을 상징적 존재로 규정한 일본 헌법은 1946년 11월 3일 공포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히 제2장 9조는 전쟁과 무력 행사의 영구 포기, 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GHQ가 개헌안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1954년 세상에 알려진 뒤로 보수 진영에서는 ‘강요된 헌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개헌론이 끊이지 않는다. 타깃은 군사력에 족쇄를 채운 헌법 9조다. “평화헌법 개정이야말로 독립의 상징”이라며 개헌을 주장했던 고(故) 아베 신조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법제화하며 사실상 일본은 재무장의 길을 열었다.
■8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316석을 얻어 개헌안 발의선인 의석수 3분의 2를 넘었다. 아직은 ‘여소야대’인 참의원의 문턱이 높지만 ‘아베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개헌을 주장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70년 만의 평화헌법 개정에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 정세에 잠재적 리스크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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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