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미 투자 첫 카드… 한국형 원전 ‘APR1400(2002년 개발한 1400MW급 가압 경수로)’ 제안

2026-02-09 (월) 12:00:00 서울경제=조윤진·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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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원전 첫 진출 추진
▶ 미국, 콕 집어 에너지 투자 희망하자
▶ 김정관, 러트닉·라이트 장관 만나

▶ 미원전에 한국형 원자로 건설 제시
▶ 원전 르네상스 계획 중추역할 노려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모델인 APR1400 건설을 제안했다. 관세 재인상 압박에 나선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에 에너지 분야 투자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가 한국형 원전 사업을 제시한 것이다.

한국은 단순 건설이나 부품·자재 조달에 그치기보다는 미국의 원전 르네상스 계획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움직일 계획이다. 한국형 원전이 미국으로 진출할 경우 미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WEC)와의 지식재산권 협정으로 손발이 묶인 국내 원전 산업도 슈퍼사이클에 돌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5일 여권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및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미국에 APR1400을 건설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미 원자력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APR1400은 한국이 WEC의 원천 기술에 기반해 2002년 개발한 1400㎿(메가와트)급 가압 경수로로 OPR1000이나 APR1000보다 발전 용량이 40% 더 크다. 한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처음 수출한 원전 역시 APR1400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APR1400 건설을 제안한 것은 한국형 원전이 수출돼야만 한미 원자력 협력 및 20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원자력규제위원회 개혁 및 원자력 기반 활성화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2024년 기준 약 100GW(기가와트)인 미국의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00GW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미국에 지어질 수백 기의 원전에 한국형 원자로가 포함되면 미국 시장에서 한국 원전 생태계의 입지는 한층 강화될 수 있다. 한국 원전 기업이 생산하는 부품들이 대부분 APR1400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내에 지어질 원전에 더해 해외에서 APR1400이 추가 보급되면 설계는 물론 핵심 기자재와 주요 부품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APR1400 맞춤형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한국에 집중돼 있어 우리 기업들이 유리한 출발점에 서게 된다.

미국으로서도 APR1400을 사용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역내 수요의 한계 탓에 용량을 낮춰 APR1000 건설을 결정한 체코와 달리 미국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맞추는 데 허덕이는 형편이다. 원자로 한 기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각종 규제 심사나 공사 기간은 거의 비슷하므로 한 번 지을 때 큰 용량의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유리한 환경이다. WEC의 AP1000보다 APR1400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할 원전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경우 지난해 9월 황주호 전 사장이 사임한 이래 5개월째 공석 상태다.

한수원·한전이 지난해 1월 WEC와 체결한 지재권 협정도 걸림돌이다. 당시 한수원·한전은 지재권 분쟁을 해결하고 체코 원전 수주를 확보하는 대신 미국·유럽(체코 제외)·일본 등 원전 유망 시장 진출 권리를 최소 50년간 포기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팀코리아’의 원전 진출 가능 지역은 베트남·튀르키예·UAE 등으로 크게 축소됐다.


다만 여권 고위 관계자는 “미국 시장 진출이 막힌 상태지만 한미 협력이 가속화되고 미국 정부가 나선다면 진출 가능성이 열릴 여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대미투자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경제 6단체는 “미국의 예고된 25%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자동차·바이오 등 산업 전반의 대미 수출에 막대한 타격이 초래될 수 있다”면서 “기업들이 관세 불확실성에 노출되지 않도록 특별위원회의 조속한 합의를 통한 2월 내 국회 통과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서울경제=조윤진·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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