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지 F. 윌 칼럼] 행정권력이 비대해진 시대, 지금 읽어야 할 책

2026-01-30 (금) 12:00:00 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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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와 긴급성을 내세운 행정 권한의 확장이 일상이 된 지금, 한 권의 책이 시의적절하게 등장했다.

버지니아대 법대 교수 G. 에드워드 화이트가 쓴 연방대법관 전기 ‘로버트 H. 잭슨: 판단의 삶’이다. 이 책은 대통령 권한과 헌법 원칙이 충돌할 때 사법부는 어디까지 자제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묻는다.

1940년, 잭슨이 대법관이 되기 전 연방대법원은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학군이 학생들에게 국기 경례를 강제할 수 있다고 8대 1로 판결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이를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우상숭배라며 거부했다.


이 판결문을 쓴 이는 펠릭스 프랭크퍼터 대법관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강제 경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법부는 입법과 행정의 판단에 가급적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학군의 목적에는 합리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국가적 단결은 국가 안보의 기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1943년, 잭슨이 대법관으로 재직한 지 2년째 되던 해, 대법원은 같은 여호와의 증인 사건에서 이전 판결을 6대 3으로 뒤집었다. 다수 의견을 쓴 잭슨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소수의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쫓을 수 있는 권한을 확인해 주는 것이 과연 국가의 힘을 입증하는 일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국가 안보라는 이유만으로 “공식적으로 강요된 획일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그는 보았다.

또 그는 권리장전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권리장전은 특정한 자유들을 정치적 다툼의 대상에서 떼어내, 다수의 뜻이나 권력자의 의지로 침해할 수 없도록 법원이 지켜야 할 원칙으로 만들어 놓은 장치라는 것이다. 그는 “권위는 여론에 의해 통제되어야지, 여론이 권위에 의해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화이트 교수는 이러한 잭슨의 표현이 전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들을 고려하면 다소 과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듯, 1943년은 전쟁으로 인해 애국주의가 극도로 고조된 시기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잭슨의 발언은 오히려 정확한 문제 제기였다.

그리고 1년 뒤, 잭슨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헌법 원칙을 훼손하는 데 대해 더욱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서부 해안에 일본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는 프레드 고레마쓰 같은 미국 시민들에게 해당 지역을 떠나 강제 수용소로 이주하라고 명령했다.

1944년, 대법원은 고레마쓰의 위헌 소송을 6대 3으로 기각했다. 이에 대해 잭슨은 반대 의견을 냈다. 그는 전시 상황에서 군 지휘관의 판단을 법원이 직접 심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다만 그는 이 강제 수용 정책이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잘못된 조치”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법원이 이해하는 의미의 ‘입법’이 아니라,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군사 명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잭슨이 진정으로 우려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법원이 이 조치를 헌법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는 순간, 인종 차별과 시민 강제 이주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런 판결은 “언제든지 긴급한 필요라는 명분만 있으면 누구나 꺼내 쓸 수 있는, 장전된 무기를 바닥에 놓아두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철강 공장을 접수했다. 잭슨은 이에 대해,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명분으로 국내 문제까지 무제한 장악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음산하고 위험하다”고 일축했다. 법적 근거 없는 권한 행사는 어떤 긴급성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통령이 “비상사태”나 “존재적 위기”를 앞세워 헌법을 우회하려는 주장에 점점 무뎌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잭슨은 이렇게 말했다. 행정부를 법의 테두리 안에 두기 위한 제도들이 “사라질 운명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데 있어 법원은 가장 먼저가 아니라 가장 마지막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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