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하독좌(松下獨坐)
▶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소나무 아래 홀로 앉아서) 평양조선미술박물관
가을 기운 차가운데 바위에 홀로 앉아
텅 빈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네
발 아래는 가파른 절벽인데
늙은 소나무 나의 벗이 되어주는구나
가지를 타고 겨우살이 내려와도
소나무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네
세속의 명리 다 부질없어라
홀로 서 있는 노송 또한
누가 알아주길 바라겠는가
소나무여
그래서 나 그대를 벗하노라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첩(妾)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庶孼)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문과나 무과에 응시할 수 없었고 하급 관직으로만 나갈 수 있었다. 자(字)가 원령(元靈)이며 호(號)가 능호관인 이인상은 3대에 걸쳐 대제학을 낳은 명문가의 후손이었지만 조부가 서출인 원대서출(遠代庶出)이어서 높은 관직에는 나갈 수 없었다.
그는 시문과 학식은 물론 그림에도 뛰어나 당시 문사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몸이 쇠약하고 가난하게 사는 그를 위해 친구인 신소와 송문흠이 남산 아래에 작은 집을 사주고 그 집을 능호관이라 불렀다. 이는 이인상이 벗들에게 얼마나 신뢰받았고 사랑받는 인품의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궁핍하게 살던 그는 이곳에서 말년을 편안하게 보냈다. 그의 초상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데, 그림 속의 능호관은 너그러운 선비의 모습이지만, 그는 신념이 강하고 강직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그림은 기교보다는 정신성(精神性)을 중시하였고, 고독한 노인, 노송(老松), 바위, 와운(渦雲) 등을 그려 신분 제약으로 인한 우울함, 무력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자신의 서재에 써 붙인 ‘궁불위명(窮不違命) 몽매역청(夢寐亦淸)’, 즉 ‘궁핍해도 천명을 어기지 않고 꿈속에서도 또한 맑으리라’라는 글귀는 그의 선비로서의 곧은 자세를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는 이인상의 인품을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라고 평했는데, 이는 ‘글을 많이 읽어 학문적 소양이 높은 사람에게서 풍기는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라는 뜻이다. 또한 이인상의 벗인 이윤영이 “능호관의 시는 봄 숲의 외로운 꽃이요, 가을 밭의 선명한 백로다.”라고 한 말에서 그가 그림 뿐만 아니라 시문(詩文)에도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커다란 노송을 뒤로 하고 산 위의 너럭바위에 홀로 앉아 있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아마 이인상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위로 곧게 솟은 소나무지만 아래로 축 처지고 구부러진 가지는 그의 좌절과 고통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는 물기가 거의 없는 마른 붓(渴筆, 갈필)으로 먹의 농담(濃淡)과 담채를 사용하여 고담(枯淡)한 분위기를 그려냈는데 소나무와 선비, 바위의 굴곡과 윤곽을 그린 화법이 이를 보여준다. 또한 소나무 가지를 타고 내려와 늘어진 겨우살이는 그림에 쓸쓸함을 더해 준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원령취사(元靈醉寫) 갑술제야(甲戌除夜)’, 즉 ‘원령(이인상)이 갑술년(1754년) 제야에 술에 취해 그리다’라고 쓰여있어 그가 추운 연말에 술을 마시고 그림을 그렸을 때 울적한 심사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은 당시의 명사들로부터 속기(俗氣)가 제거된 높은 경지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림 속의 선비는 멀리 텅 빈 하늘과 산 아래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그는 당쟁과 신분제도의 모순이 가득한 세상을 내려다보며,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로서 벗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연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뛰어난 학식과 능력이 있었지만, 신분의 한계에 막힌 그의 선비로서의 고통과 외로움이 묻어나면서도 거속(去俗)의 품격이 느껴지는 명작이다. joseonkyc@gmail.com
<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