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조롱받는 72만 ‘쉬었음 청년’
2026-01-15 (목) 12:00:00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혜민 스님은 “내가 쉬면 세상도 쉰다. 세상이 바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쁜 것이다”(‘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고 했고, 요한 하리는 “멍하게 있는 시간은 뇌가 쓰레기를 치우고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도둑맞은 집중력’)이라고 했다. ‘비움’을 통해 ‘채움’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 하지만 그건 휴식 뒤에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을 때 얘기다. 경제통계학적 용어인 ‘쉬었음’은 기약 없는 쉼이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가 있다. “지난 4주 내 직장(일)을 구해 봤냐”(29번)와 “지난주 직장(일)을 원했느냐”(33번)는 문항에 모두 “아니다”고 답한 이들에게 “지난주 주로 무엇을 했느냐”(37번)고 묻는다. 여기에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이다. 작년 11월 기준 254만3,000명, 이 중 ‘쉬었음 청년’으로 불리는 20대와 30대가 무려 71만9,000명이다.
■ ‘쉬었음 인구’ 표현은 다분히 논쟁적이다. 경제활동인구조사 지침서는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쉬고 있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최근 ‘쉬었음 청년’을 폄훼하거나 조롱하는 놀이문화가 번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성적이 나쁜 야구 구단을 ‘쉬었음 구단’이라 부르는 식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게으르고 나태하다며 ‘쉬었음 XX’처럼 직설적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 이들 대다수는 그냥 쉰 것도 아니고, 쉬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고, 쉼을 당했다고 여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취업난을 개인 문제로 치환하는 무책임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쉬었음 청년’을 ‘준비중 청년’으로 부르겠다고 했다. 인식 전환이 반갑긴 한데, 좀 더 적절한 표현이 아쉽다. 단순히 용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온도를 높여 올바른 해법을 찾는 일이다. 부처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보는 것도 좋겠다.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