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야기 가득한 ‘조선의 명화’ 읽기

2026-01-06 (화) 08:02:16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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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감주마도(酒酣走馬圖)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 (술이 거나하게 취해 말을 달리다) 개인 소장

이야기 가득한 ‘조선의 명화’ 읽기
백마 타고 벌판 달리니 장부의 기개 드높구나
잘 익은 술 온몸에 퍼지니 거칠 것이 없어라

애마(愛馬)도 오늘은 마음껏 달렸으니
도성으로 가는 발길 경쾌하구나

앞에 있는 늙은 소나무여 길을 비켜라
어지러운 이 세상 바로잡을 걸음이다


2026년 새해는 말 띠 해인 병오년(丙午年)이다. 병(丙)은 오행 중 ‘불(火)’에 해당하므로 올해는 뜨거운 불꽃의 에너지를 품고 대지를 질주하는 붉은 말(赤馬)의 해이다.
위의 그림을 그린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는 전남 해남(海南)의 부유한 사대부로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자였다. 당쟁으로 어지러운 한양을 떠나 고향인 해남에 내려와 살면서 중국에서 다양한 서적과 화첩(畵帖), 실학(實學)과 관련된 책을 구해 읽고 공부하여 매우 진취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그는 겸손하고 너그러운 성품이었고 평범한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특히 도석인물(道釋人物), 풍속, 화조(花鳥) 및 말(馬) 그림을 잘 그렸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말을 달리다>는 제목으로 중국풍이 느껴지는 이 그림 속의 인물은 풍류 귀공자이거나 말타기를 즐겨 하는 호탕한 호걸일 것이다. 백마를 타고 한껏 넓은 벌판을 달리며 사냥도 하고 잘 익은 술에 흥이 오르니 어지러운 세상도 단번에 바로잡을 수 있을 듯한 남아의 기개가 느껴진다.

공재는 말을 좋아했는데, 말을 그리기 위해 마구간 앞에서 며칠씩 관찰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감주마도>는 한 손으로는 크고 우람한 백마의 말고삐를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말 채찍을 높이 든 호걸과 이에 보조를 맞추고 달리는 말의 역동적(力動的)인 모습이 살아있는 듯 그려졌다. 말꼬리에 장식까지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이 얼마나 귀하게 여긴 말인지 알 수 있다. 그림 가운데의 꾸부러진 늙은 소나무도 말을 모는 사나이의 기세에 눌렸는지 잔뜩 허리를 굽힌 듯하다. 가운데 옹이가 크게 박힌 노송과 백마를 탄 사나이의 모습이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굵직한 선으로 그려져 강한 인상을 준다.

그림 왼쪽에는 크고 굵은 호방한 글씨의 화제(畵題)가 있는데 중국 당나라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시 <동저십이낙양도중작(同儲十二洛陽道中作), 즉 ‘저씨(儲氏)네 열두째 자제와 함께 낙양으로 가는 길에 보고 지은 시’라는 뜻으로,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珠彈繁華子(주탄번화자) 구슬 탄환 가진 자는 부귀한 집 자제요
金羈遊俠人(금기유협인) 금굴레 말 탄 자는 호기로운 협객이라
酒酣白日暮(주감백일모)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이에 해는 저무는데
走馬入紅塵(주마입홍진) 말을 몰아 먼지 자욱한 세속으로 뛰어드노라

여기서 구슬 탄환이란 협기(俠氣) 넘치는 풍류객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많은 문인화가가 대부분 조용한 자연 속에 은거하는 선비의 모습을 산수인물화로 그리는데 머물렀지만, 공재처럼 호방하고 당당한 사나이의 기개를 보여주는 그림을 그린 사람은 드물었다. 이러한 점에서 공재의 <주감주마도>는 그 소재와 화풍이 대륙적인 발군(拔群)의 그림이라 할 것이다.
공재의 이 호탕한 그림이 보여주듯 새해에는 우리 한국인이 미국 사회에서 더욱 활기차고 약동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해 본다.
joseonkyc@gmail.com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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